“그런 가보지. 양반이 생각해보니 죽었다 깨어난 것이 희안하기도 하고 저승이 어떤지 너무나 궁금한 거여. 그래, 상놈을 불러‘저승을 갔더니 어떻든가’하고 물었어. 상놈 왈 ‘아이고 기가 막혀 얘기하기도 민구스러워 자기 입으로는 도무지 못하겠다’며 뜸을 들이는 겨. 더욱 궁금해진 양반이 상놈을 틀어잡고 얘기를 해보라고 오복조르듯 했어.”

“그 양반님 착하기도 허네! 양반이 물어보는데 냉큼 대답할 일이지 워째 뜸을 들인디야. 내가 양반이라면 당장 상놈 주리를 틀어버리지, 사정은 무슨 놈의 사정!”

순갑이가 지게 작대기를 다리 사이에 넣으며 주리 트는 시늉을 했다.

“풍원아, 그래 저승 갔다 온 상놈이 뭐가 그렇게 기가 막히더래?”

장석이도 저승은 궁금한지 건성으로 물었다.

“양반이 하도 궁금해 하니 종놈 한다는 말이 ‘저승과 이승은 완전히 반대드라구유’하더래. 그래 뭐가 반대냐고 물었더니 우물쭈물 뜸을 들이더니 ‘저승에 갔더니 우리 아부지하고 안방마님하고 글씨 내우가 돼있지 뭡니까유’하더래. 그 소리를 들은 양반이 기가 막혀 ‘예끼, 망할 놈아! 그런 흉칙한 소리 어디 가서 두 번 다시 하지마라’고 엄포를 놨대요. 그런데 며칠 뒤 상놈이 옷을 차려입고 어디를 가더래. 그래서 양반이 어디를 가냐고 물으니 ‘누가 저승 다녀온 얘기를 해달라고 해 거길 갑니다유’하드라는거여. 깜짝 놀란 양반이 ‘이 사람아 가기는 어딜 가나! 오라, 집에 양식이 떨어진 모양이구나. 내가 쌀 여나무 섬을 돌려줄 터이니 당최 그런 소리 하덜랑 말고 어서 집으로 들어가거라’고 사정을 하더라는 거여.”

“왜 쌀도 주고 사정을 하는 거여?”

장석이가 딴짓을 하다 풍원이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리고 남 다리 긁는 소리를 했다.

“너 같음 니 마누라가 딴 놈하고 살림을 차렸다는데, 그 얘기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좋겠냐?”

“어떤 년이 살림을 차렸는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하네!”

순갑이가 장석이의 엉뚱한 소리에 대책이 없어 두 손을 들었다.

“풍원이 동생, 그걸로 끝인가?”

익수가 뭔가 아쉽다는 듯 물었다.

“재미가 들린 상놈이 집에 양식만 떨어지면 저승 얘기하러 간다며 이젠 대놓고 돈도 쌀도 달라고 하는 겨. 그래도 양반은 동네에 드러운 소문이 퍼질까 두려워 벙어리 냉가슴을 앓듯 하며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었다는 거여. 아무리 곳간이 그득해도 퍼내기 시작하면 바닥보는 것은 시간문제 아녀? 얘기하러 간다고 할 때마다 한 보따리씩 퍼주다보니 양반집도 기울어 형편이 말이 아니게 된 거여. 외려 상놈이 더 부자가 되고 양반이 간해진 거여.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된 거지. 그래 양반이 ‘어떻하나, 이젠 자네가 나를 좀 먹여 살려줘야 되겠네’하고 애걸한 거여. 그랬더니 상놈 하는 말이 ‘먼 죽는 말씀이래유. 황소다리가 마르믄 아주 마르겠어유’하면서 곧이 듣지를 않더라는 게여.”

“황소다리는 뭔 소리여?”

“장석이 동생, 부자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는 얘기 아녀.”

익수가 설명을 해주었다.

“황소다리하고 부자는 또 뭔 소리유?”

장석이는 힘만 꿍꿍 쓸 뿐 도통 뭘 깨쳐보려고 애를 쓰지 않았다.

“그동안 저를 도와준 것이 얼만데, 괘씸한 생각이 든 양반도 꾀를 냈대요.”

“뭔 꾀를?”

“어느 날, 양반도 죽었다가 깨어났다고 동네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네요. 그리고는 저승 다녀온 얘기를 해주겠다며 동네사람들을 집 마당으로 모두 불러 모았대요. 물론 상놈도 왔겠지요. 그런데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저놈을 당장 묶어 곤장을 쳐라’고 호령을 하더래요. 늘씬하게 곤장을 얻어맞은 상놈이 연유를 알자고 했을 거 아니우. 그러자 양반 왈 ‘내가 저승에 가서 니 애비를 만나 사실을 물었더니, 니 애비는 마님을 본적도 없다고 하던데 어찌된 일이냐. 니 애비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네 놈이 거짓말을 한 것인지 밝혀보자. 네 놈이 저승에 가서 니 애비를 당장 이 자리에 데리고 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상놈 주제에 양반을 능멸한 죄로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하고 곤장을 치니 오줌을 질질 싸며 살려달라고 빌더라는구먼요.”      

“양반을 울궈먹은 것은 통쾌하지만 상놈도 어지간히 해먹고 말지, 뭔 봉을 뽑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그 지경을 당했디야.”

“그래도 상놈이 그런 대가리를 쓰다니 대단하구먼!”

“대가리야 한 대가리지 양반 상놈 대가리가 따로 있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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