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규 량 <세명대 미디어문학부 교수> krhan@cjnc.ac.kr

지난 해 원정출산에 대해 보도될 때만해도 남의 일로만 느꼈었다. 그런데 지난 달 미국에서 귀국수속을 밟는데 유모차를 끌고 온 산모를 위해 친지들이 옆에서 수속을 도와주는 것을 보니 슬픈 현실로 다가왔다.

유모차에 뉘어진 아기는 포대에 쌓여서 얼굴을 거의 볼 수 없었고 몸조리 잘하라는 말투 등의 분위기로 보아 원정출산하러 친정친지들이 있는 미국으로 산모가 출국했음이 짐작됐다. 어디 그뿐인가. 비행기를 타고 보니 또다른 산모가 필자의 앞줄에 앉아있었기에 부석부석 부운 산모를 실감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인간의 복 중에는 동물 중에 일단 사람으로 태어난 복이 가장 큰 복이라고 불교에선 설명한다. 그런데 기왕이면 큰나라에서 태어나는 것이 또 다른 복이리라 생각된다. 대한민국이 큰나라인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큰나라인 것만은 틀림없나보다.

만삭의 배를 하고 아기를 낳으러 떠나는 임산부는 미국에서 출산을 함으로써 닻을 달고 돌아올 수 있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자라 20세가 넘었을 때 그를 계기로 온 가족이 이민을 갈 수 있게되므로 이런 아이를 두고 미국에선 닻아이(anchor baby)라 분석한다. 미국은 속지주의 국가이므로 출생과 더불어 자동으로 미국인이 되고, 그의 부모는 이미 미국인이 된 그 아이 덕에 미국으로의 이민이 쉬워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지는 것이다.

미국에서 출산을 하려면 병원 진료비만해도 2만달러(약2천500만원)가 소요되고 그외 체재비, 항공료 등이 부가된다. 뿐만아니라 난산 등의 위험까지 무릎쓰고 출산하려는 산모의 수는 점점 늘고 있기에 미국에선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의료진까지 확보하는 병원이 있을 정도로 이젠 기업화하고, 이를 위한 산후조리원까지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원정출산이 늘어날 정도로 왜 대한민국이 작아졌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비전이 없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살아본 들 노후가 보장이 안되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는 나라에서 갈등하고 경쟁하기 위해 쓰는 비용을 미리 마련해 원정출산에 써보자는 것이고, 그런 우리나라에서 내 아이를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두 번째는 내면적인 사유가 되겠는데 원정출산이 추후 아이의 병역문제, 한국내 전쟁 발발가능성에 대비한 처사라는 점이다. 원정출산으로 태어나는 아이가 한 해 5천명이 넘고, 이들의 대다수가 남자아이인 것을 보면 우연이 아니리란 생각이 든다. 이렇듯 한국의 정치적인 불안감 역시 한국을 떠나게 하는 요인인 것이다.

태아가 남자아이인 것으로 확인된 산모가 원정출산의 주고객이라 하니 이러다가는 아들 가진 남은 부모들이 곱절로 마음고생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10대가 되어 조기유학을 떠날 10여년 후엔 엄청난 유학비용을 싸들고 가지 않아도 되고, 장차 그들이 태어난 고국인 미국으로 완전히 떠난다해도 결국 코리언 아메리칸이 될터이니 크게 걱정할 바는 아니다. 단지 그들이 몇천만원을 미리 들여서까지 미국에서 출생하여 미국의 사회보장 번호를 부여받았기에 먼 장래 그들의 노후생활까지 이미 보장받았다는 점이 부러울 따름이다.

노후를 맡길 수 있는 변변한 사회보장책도 없는데 노인들을 부양해 줄 장래의 경제활동 인구마저 빠져나가고 말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현재의 1.17명보다 훨씬 적은 통계로 집계될 것이니 걱정스럽다. 이젠 우리도 속인주의에서 속지주의국으로 전환해야할 때가 온 듯하다. 3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원정출산하러 올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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