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에만 사는 고기는 바다에 얼마나 큰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 한양에 가면 이런 시골 주막집 한 채는 한 끼 식사 값도 안 되는 부자들이 곳곳에 많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런 부자들은 뭘 해서 그렇게 큰돈을 벌었을까요?”

풍원이는 정말 궁금했다.

“장사를 해서 번 사람도 있고, 물려받은 사람도 있고, 벼슬아치들도 있고, 부자 된 사람들이 돈을 모은 방법이야 가지가지 아니겠는가?”

“어떤 장사를 하면 그런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건 딱히 말하기가 어렵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네처럼 소금 가마니나 지고 다니며 산골로나 돌아다니면 부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지. 큰물에 큰 물고기가 산다네. 큰 물고기를 잡아야 뜯어먹을 게 있지, 잔챙이 잡아야 먹을 게 뭐가 있겠는가. 젊은이도 산골로 돌아다니지 말고 대처로 다녀. 사람 모이는 곳에 돈도 따라 모이는 게 세상 이치여.”

약재상이 말했다.

“고맙습니다요.”

울안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면 누구에게라도 배울 것이 있었다. 풍원이가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이튿날부터 풍원이는 연풍 인근 두메로 다니며 소금을 팔았다. 주막에서 만났던 문경 약재상 형제는 사람들이 붐비는 큰 장에서 장사를 하라고 충고했지만, 풍원이는 계획했던 대로 장사를 해보기로 했다. 큰물에 큰 물고기가 사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선은 큰 물고기를 만날 준비가 필요했다. 큰 물고기를 만나도 그를 대적할 만한 힘이 없으면 굴종하거나 잡아먹히는 것이 정한 이치였다. 먹히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큰물로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큰 고기들의 눈에 띄지 않는 가장자리에서 몸을 키워야 했다. 그리고 돈을 모아 큰물기와 대적할만한 힘을 키워야했다. 풍원이처럼 가진 것 하나 없이 몸뚱이만 있는 장사꾼이 돈을 모아 기반을 잡으려면 그들의 시선 밖으로 다니며 발품을 파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풍원이는 소금 섬을 지고 행상조차 잘 가지 않는 산골로만 다녔다. 산골 사람들은 소금 장수를 무척이나 반겼다. 서너 호밖에 되지 않는 마을은 그래도 큰 축이었다. 마을이라 부르기에도 뭐한 두세 호도 되지 않는 곳도 많았다. 어떤 깊은 산중에는 한 가구만 있는 외딴 집도 꽤 있었다. 그런 곳은 가봐야 발품 값도 나오지 않으니 장사꾼들이 갈 리 만무했다. 그런 집들은 몇 달이 지나도 바깥사람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가끔 약초를 찾아다니는 심마니들이나 산 아래 큰 마을에서 나물 뜯으러왔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들어오는 아낙네들이 아니면 해를 넘기도록 식구들 외에는 볼 수 있는 얼굴이 몇 되지 않았다.

“여기 삿갓배미에 장사가 들어온 것은 첨이요!”

연풍에서 우산배미를 거쳐 마패봉 아래 삿갓배미에 올라갔을 때였다. 우산배미는 우산 하나면 동네 논밭을 몽땅 덮을 정도로, 삿갓배미는 삿갓을 벗어놓으면 모두 가릴 정도로 땅이 좁다 해서 부르는 이름이었다. 삿갓배미에서 다락논과 화전을 해먹으며 살고 있던 그 집 바깥주인은 풍원이를 보자마자 반색을 했다.

“아이고! 친정 동상 본 것 맨치 눈물이 나는구먼!”  

그 아낙은 얼마나 사람 구경을 못했으면 처음 보는 풍원이를 보고 눈물까지 흘리며 반가워했다.

“장사 총각, 여기서는 장에 한 번 댕겨올라면 하루해로는 모자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래 올라와주니 정말 고맙구려!”

어떤 사람은 물건을 팔아주면서도 오히려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첩첩산중에 생전 처음 소금 장수가 들어왔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이기는 했지만 풍원이도 수리골과 연풍에서 삼 년 여를 살았었다. 그 때까지도 골골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수리골로 숨어들어와 살던 교도들이나 유랑민들만 산골짜기에서 죽을 고생을 견디며 사는 줄 알고 있었다. 풍원이는 그들을 보며 예전 수리골로 숨어들어 짐승처럼 살았던 움막 생활이 떠올랐다. 장사를 다니며 보이는 두메 사람들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양에 큰 부자들은 주막 한 채 값을 한 끼 식사로 하고, 소금 수십 섬 되는 산삼을 사먹는다는데, 산골에 처박혀 죽도록 일만 하는 사람들은 서푼 되는 소금 한 됫박도 살 수가 없어 사발 소금을 사는 집들이 비일비재했다. 어떤 곳에서는 연로한 할머니가 소금 살 돈이 없어 장을 퍼주고 사정하기도 했다. 장사를 다니며 그런 일을 볼 때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풍원이는 가슴 저 밑에서 막연한 분노 같은 것이 일어났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