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갑 노인의 위안에 풍원이는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풍원이도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다. 무뢰배들에 대한 분노로 꽉 막혔던 숨통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살미장에서부터 혼자 밤길을 걸어오며 빠졌던 온갖 상념들도 사라져버렸다. 세상의 어떤 문제도 털어놓을 상대만 있다면 혼자 생각할 때처럼 그렇게 막막하지만은 않았다.

“어떻게 하겠느냐?”

“다시 나가 보겠습니다!”

풍원이가 마음을 재차 다지며 다시 행상 길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어디로 가보겠느냐?”

“이번에는 향시가 서지 않는 촌이나 산골로 가보겠습니다.”

“소금 한 섬을 내줄테니 네 뜻대로 한 번 해 보거라.”

“촌으로 다니며 행상을 해도 장세를 내야 하는가요?”

풍원이가 살미장에서 험표를 내놓으라며 윽박지르던 무뢰배들이 생각나서 물어보았다.

“그런 건 없다! 그건 예전에 나라에서 일부 특정상인들에게 내렸던 특혜였다. 그러나 이미 몇 십 년 전에 없어졌다. 지금은 몇몇 육의전에게만 그 특혜가 있을 뿐 일반 장터에서 장세를 받는 건 불법이다.”

“그럼 무뢰배 놈들이 장세를 거둔 것은 뭔가요?”

나라에서는 장세를 받지 못하도록 했다는데, 풍원이는 살미장에 횡행하고 있는 장세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세상이 어디 법대로만 되더냐. 그리고 해처먹던 놈들이 제 밥통을 하루아침에 놓으려 하겠느냐. 온갖 편법을 써서 뜯어먹고 있는 거지.”

“관아에서 나온 장 감고는 그런 놈들을 단속 않고 뭘 하는 건가요?”

“있으면 뭐하겠느냐? 언제 그런 자들이 장바닥을 세세하게 살피러 다니며 억울한 일 당한 장꾼들 보호하는 것 보았더냐. 어디 콩고물 떨어질 데 없나 눈이 벌개 장사꾼들 눈치나 살피기 다반사지.”

“그럼 우리네는 달라면 줘야겠네요?”

“글쎄다. 길가다 도적놈 만나 빼앗긴 셈 치고 주든지 말든지 그건 그때그때 네가 알아서 수단껏 하거라.”

“너무 억울하잖아요.”

풍원이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남의 등이나 쳐서 먹고사는 무뢰배같은 놈들에게 장세 명목으로 빼앗기는 것이 부당하단 생각이 들었다.

“장은 여러 부류들이 모여 돌아간다. 무뢰배들이라 해서 장에 해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들을 필요로 하고 도움을 받고 있으니 그들도 살아남은 것 아니겠느냐?”

우갑 노인은 무뢰배들을 은근히 두둔하는 말투였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놈들은 장터에 마마처럼 백해무익한 놈들일 뿐입니다!”

풍원이는 우갑 노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사에 도움이 된다면 그들도 이용을 하라는 말이다.”

“무뢰배 놈들이 장사에 뭔 도움이 되겠습니까?”

우갑 노인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풍원이는 계속해서 우갑 노인의 말에 반기를 들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당장 장사를 떠나야하니 불안한 생각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헛장사를 했어도 두 번째 떠나는 장삿길이라 그런지 처음처럼 설레거나 막막하지는 않았다.

풍원이가 이번에는 두메산골로 행상 길을 잡았다. 향시가 열리는 장마당에는 이미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장사를 해온 터주들의 텃세도 심할 것이고, 혹여라도 무뢰배들을 만나면 성가실 것 같은 생각해서였다. 또 뱃길이 닿지 않는 내륙 깊숙한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무래도 뱃길이 닿는 나루터와 가까운 마을에서의 장사는 이문이 덜해서였다. 아무래도 행상들의 발걸음이 뜸한 곳으로 다니면 소금도 귀하고 그만큼 찾는 사람도 많아 잘 팔릴 것 같았다.

풍원이가 소금 한 섬을 받아 행상을 떠난 곳은 연풍이었다. 연풍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한 쪽이 써늘하도록 아픈 곳이었다. 고향인 청풍을 떠나 목숨을 부지했던 곳도 연풍이었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잃고 천애고아가 된 곳도 연풍이었다. 무엇하나 가슴이 뛸만한 기억은 조금도 없는 곳이 연풍이었다. 그런데도 풍원이가 연풍으로 두 번째 행상지를 삼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수년간 살았던 까닭에 연풍 인근 길과 골골이 두메산골마을까지 잘 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행상 길에 자신들을 돌봐주었던 주막집 아주머니와 딸 분옥이도 찾아가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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