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창 식 <세명대 미디어문학부 교수>

지역마다 문학 영웅과 문학 귀신 지킴이가 있다. 충북에는 권섭, 홍명희, 이무영과 정지용 등 간단히 들어도 끝이 없을 정도다. 살아있는 신경림 등도 지역지킴이 노릇을 하는 것이 보인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과장해 세계적으로 글쓰기를 했다고 하지만 결국 고향성과 지역성을 떠나지 못한 덕에 그곳의 문화유산이 됐다.

문화유산의 지킴이처럼 문학축제의 신이 되었거나 될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승에서도 행복하다고 믿기에 살아있는 문인들도 문학비를 세우고 그곳의 문학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더욱 흥미 있는 것은 이들을 팔아 돈을 벌고 그곳에서 문화적 인기를 누리는 지방정부 단체장과 예술인사도 있다는 것이다. 지적 재산권 시비가 있겠지만 그들의 문학적 신도(神徒)가 된 것처럼 열성독자로 톡톡히 재미 보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름 있는 그 고장 출신의 문인은 정작 본인보다 그것을 빙자하여 돈은 벌고 이를 흉내 내어 건네는 솜씨로 지역에서 폼을 잡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 자체도 문학이다. 긍정적으로 보아 관광문학, 여행문학, 축제문학 웰빙문학 등의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

여행문학은 웰빙시대에 부합하고 있는 또 다른 장르가 된 셈이다. 청정한 자연의 빛이 있고 그 빛에 걸맞게 문인의 말 향기에 취해 찾아가는 곳. 그 귀향의 탐색 욕망, 우리는 감동의 웰빙문화라고 부른다. 작가의 상상력과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교묘하게 맞물려 아련한 그리움을 던져준다.

초고속사회에서 오히려 역설의 그리움이 간절한 시대에 지역문학은 또다른 매력 덩어리가 됐다. 마치 그곳의 웰빙의 끝자락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작품에 감동을 받아 그 곳에서 삶의 에너지와 자기반성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문학 읽기는 단순히 지적 여로가 아니다. 문학은 흔히 말하는 정신적 만족만 추구하는 산물이 아니다. 문학도 건강에 기여한다. 그곳에 가서 생태환경과 더불어 문인의 따스한 말을 만날 때 건강행복지수가 높아간다. 지역마다 책카페, 그림카페 등이 생겨나고 있다.

막연하나마 그걸 오늘날 독자들은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가 있는 길을 걷기를 바라고 문학이 흐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문학적 펜션에서 잠자고 놀고 싶어 한다. 문학의 엽기성이 오히려 웰빙의 건강성을 부추기는지 모른다. 의학적 먹거리 섭취와 함께 그곳의 문학유산의 체험 섭취를 요구하는 시대가 됐다.

생태치유 곧 에코 세라피의 매력도 문학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문학치유학도 필요하다. 지역의 작은 마을 이야기,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전설, 특정 집단의 가족사 등 모두 지역문화인 동시에 지역문학의 바탕이다. 그곳 문학에는 그곳 사람들의 역사인식, 지역적 정체성이 있어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호기심 천국이다. 그 곳의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자연을 잘 보존했다면 더욱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충북 곳곳에 문학공원과 시비를 활용하여 관광자원화를 이끌 필요가 있다.

반대로 지역을 찾아가는 관광객이든 이주민이든 의도적인 문학여행이 아닌 자신의 삶 일부로 인식하고 그 곳의 문학을 향유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원초적 지방색 문학도 웰빙시대의 상품이 된다. 감성이 강조되는 웰빙시대에 문학 속의 감성 원형을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데 앞서 자극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문학인의 진보적 인식이 매우 절실하다. 지역적 웰빙문학의 시대를 지역문인이 앞장서서 열어가자. 그들이 먼저 즐겨야 한다. 충북 문인들이 앞장서서 청풍명월 고장에 문학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지역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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