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 주인인 촌로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말뚝배기와 쇠살주 둘이서만 쑥덕공론으로 일을 만들더니 두 사람은 도통 소를 팔 생각이 없었다. 말뚝배기야 소주인이나 소몰이꾼들이 우시장으로 소를 몰고 오면 말뚝이나 박아주면 될 일이었지만, 쇠살주는 그게 아니었다. 쇠살주는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든 흥정을 해 일을 성사시켜주는 것이 제 할 일이었다. 그런데 쇠살주는 적극적으로 호객을 하지도 않고 누군가가 찾아와 관심을 보여도 팔 소가 아니라는 둥 팔린 소라는 둥 핑계를 되며 손님을 쫓아버렸다. 촌로는 몸이 달았다. 그래도 내색을 하지 못하고 쇠살주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었다.

촌로는 첫새벽이 오기도 한참 전부터 일어나 누렁이에게 마지막으로 당가루도 한바가지 듬뿍 뿌려 여물을 쑤어 먹였다.

“누렁아 그동안 우리 집에 와서 고생 많이 하고 애썼다. 맛있게 먹거라.”

촌로가 누렁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집을 나서면 누렁이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었다. 누렁이는 다섯 해 전 보송보송한 송아지 때 촌로가 지게 바소쿠리에 지고  왔었다. 촌로의 집에서 이십 여리 떨어진 창전리에 사는 당숙네 송아지였다. 당숙네 어미소가 새끼를 낳고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농본기가 되었다. 당숙은 어미소가 농사일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며 아직도 한참은 더 젖을 먹어야하는 송아지를 가져가라고 했다. 송아지는 다리에 힘도 붙지 않아 휘청휘청 걷는 갓 난 티를 겨우 벗은 놈이었다. 촌로의 집에 와서도 송아지는 한참동안 깨성하지 못했다. 제대로 젖도 양껏 얻어먹지 못하고 너무 일찍 어미와 떨어진 까닭이었다. 촌로는 그것이 안타까워 암죽을 쑤어 먹이며 함께 잠을 자다시피하며 키웠다. 자식을 키울 때도 그렇게 지극히 키우지는 않았다. 촌로의 정성 덕분에 송아지는 고비를 잘 넘기고 누렁이 큰 소가 되었다. 그렇게 키워서인지 촌로는 누렁이가 각별했고 누렁이 또한 촌로를 어미처럼 잘 따랐다. 출타할 일이 있어 바깥출입을 했다가도 누렁이가 보고 싶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누렁이도 주인이 보이지 않으면 종일 먹는 것도 심드렁하고 기알이 없었다. 그러다 삽작으로 들어오는 주인이 보이면 콧소리를 일으키고 꼬리를 철썩철썩 치며 네 다리를 버드덩거렸다.

누렁이가 집에 온 이후 촌로의 살림살이도 많이 나아졌다. 크게 살림이 불어난 것은 아니지만 누렁이가 순하고 일을 잘한다고 인근에 소문이 자자한 덕분에 봄가을로 농본기에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이웃은 물론이고 고개 너머 다른 마을에서까지 누렁이를 빌리려고 미리미리 날을 맞췄다. 누렁이가 벌어들이는 품삯도 팍팍한 살림에 요긴하게 쓰였다. 게다가 매해 해거리도 없이 누렁이는 새끼를 낳아주었다. 누렁이는 촌로에게 복덩어리였다. 그런 누렁이를 큰아들 혼사를 치루기 위해 내놓으려고 하니 여차저차 속이 아렸다. 대창장까지 새벽길을 걸어오면서 촌로는 누렁이 잔등을 쉼 없이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누렁아, 새주인은 맘 좋고 일 적은 집을 만나거라.”

촌로가 진심을 다해 누렁이가 좋은 주인에게 팔려가기를 빌었다. 우시장 말뚝에 묶여있는 누렁이도 자신의 처지를 느끼고 있는지 고개를 늘어뜨리고 축 처져 있었다.

“노인장, 아무래도 누렁이 팔기는 어려울 것 같소.”

쇠살주가 촌로의 표정을 슬쩍슬쩍 훔치며 말했다.

“영감, 지난번 장보다 오늘 장은 금이 많이 내렸다고 그러네.”

말뚝배기도 쇠살주 옆에서 거들었다.

“집안에 큰일이 있어 오늘 장에 꼭 팔어야 하우다. 그러니 꼭 좀 힘을 써 주우다.”

촌로가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내놓은 그 금에는 흥정이 힘들 것 같으이…….”

“그러게 말여!”

쇠살주와 말뚝배기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우시장에 도착해 말뚝 한 번 옮겼을 뿐인데 해는 벌써 아침 새참 무렵이 되었다. 일찍 흥정이 성사된 사람들은 이미 소를 몰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쇠살주는 전혀 서두르려는 기색이 없었다. 누렁이를 팔아주려고 하는 것인지 말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속이 타는 것은 촌로뿐이었다. 촌로는 어서 누렁이를 팔고 송아지까지 개비해 늦어도 점심 새참 무렵에는 우시장을 출발해야 어둑어둑해지기 전 산척 아담리 집에 당도할 수 있었다. 내창장에서 아담까지는 삼십 여리가 넘는 솔찮은 거리였다. 거리도 거리였지만 아담까지 가는 길은 고개와 산길로만 된 후미진 길이었다. 대낮에도 으스스한 산길을 밤에 걷는다는 것은 위험하기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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