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성사되지도 않을 소를 가지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느냔 말이여. 좋은 자리만 해주면 무조건 말뚝 값은 준다고 하지 않았더냐?”

말뚝배기가 쇠살주를 몰아붙였다.

“그거야…….”

쇠살주가 답변을 하지 못했다.

“어떤 앰한 놈 등 처먹으려고 오늘 낼 오늘 낼 하는 소를 갖고 장난질이여. 난 너 땜에 벌써 석 장을 공쳤단 말여. 당장 빼!”

“좀만 기둘려! 이제 다 성사됐단 말여!”

쇠살주가 살살거리며 말뚝배기에게 통사정을 했다.

“쇠전 밥 먹은 지가 한·두 해더냐? 저 놈, 쪽 찢어진 눈깔하고 판때기 좀 봐라. 기름챙이처럼 반질반질한 놈인데 니 얼렁뚱땅에 넘어갈 성 싶으냐? 아마도 자꾸 트집을 잡아 금을 후려쳐 종당에는 거저먹으려 들 거다. 그러니 그만두고 어서 다른 소나 물색해봐!”

말뚝배기가 쇠살주에게 괜한 짓 하지 말고 흥정을 그만두라고 했다.

“다 됐다는데 그러네!”

쇠살주 표정에서 안타까움과 다급함이 번갈아 나타났다.

“안 되겠구만, 내가 결판을 내야지. 이보슈!”

말뚝배기가 도살꾼을 불렀다.

“왜 그러슈?”

“이 소, 지지난 장에는 너무 늙은 대다 뱃대기가 등창에 붙어 팔리지 않았고, 지난 장에는 살찌게 보이려고 우방에서 여물을 너무 많이 멕인 것이 들통 나서 팔려나가지 못했소. 뿔도 흔들흔들하고 어금니도 다 빠져 몇 남지 않았소. 눈깔에도 백태가 잔뜩 낀 게 보이지 않소? 서있기도 힘들어 흔들거리는 것 보소! 사람으로 치면 백 수도 넘은 상늙은이 중에도 상늙은이요. 소 주둥이를 벌려보면 내 말이 그짓뿌렁이 아니란 걸 금방 알거요! 잡아봐야 고기도 별반 나오지도 않을 거외다.”

말뚝배기가 늙은 소의 이력을 도살꾼에게 낱낱이 꼬박았다. 그러고는 늙은 소 고삐를 주인에게 내던지고 촌로의 누렁이를 그 자리에 맸다.

“어째 이런 소를 속여 판단 말이오?”

도살꾼이 쇠살주에게 따져 물었다.

“우시장에 이런 소도 나오고 저런 소도 나오지, 전부 좋은 소만 나올 수 있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쇠살주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어지간해야지. 이런 늙탱이를 누구한테 덩택이 씌울라고?”

“장사가 그렇고 그런 거지, 당신도 이 바닥에서 굴러먹었으면 다 알고 있었을 거 아니여?”

쇠살주가 미안해하기는커녕 도살꾼에게 허물을 돌렸다.

“그 따구로 쇠살주 짓거리 하다 니 명도 못 채워!”

도살꾼이 쇠살주에게 엄포를 놓았다.

“내 명줄을 왜 니가 지랄이냐? 그런 소리에 겁먹었으면 애당초 이런 쇠장판에 나오지도 않았을 게다 이 호로 새끼야!”

쇠살주는 외려 도살꾼에게 욕지거리를 해댔다.

“네 놈 하는 꼴이 가관이구나, 그러니 쇠전에서 주둥이질로 살지!”

“그런 네 놈은 잘나서 소 잡아 처먹고 사냐!”

“남사스러운 줄 알거라! 그래도 네놈처럼 사람들 홀려서 드러운 밥은 안 먹는다.”

“밥이 밥이지, 밥에 드럽고 깨끗한 게 어딨냐? 내 배만 부르면 장땡이지!”

“속여 처먹으려다 들통이 났으면 미안한 척이라도 해라, 이놈아! 인간이라면 염치가 있어야지, 염치가 없으면 그게 인간이냐 짐승이지!”

“내가 너한테 손해 끼친 것이 있더냐? 손해 보인 것도 없는데 왜  지랄이여.”

“사람을 꼭 죽여야만 죄가 되냐? 죽이려고 했어도 죄가 되지!”

“손해 본 얘기 하다 느닷없이 사람 죽이는 예긴 왜 하냐?”

“내 얘기는 그게 아니잖아. 손해를 보진 않았지만 당신이 날 속여 먹으려고 했다는 얘기잖아?”

“내가 사람을 죽였냐?”

쇠살주가 자꾸 딴소리를 했다. 도살꾼이 답답해했다.

쇠살주가 도살꾼의 이야기 뜻을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도살꾼이 하려는 이야기의 본뜻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쇠살주는 엉뚱한 소리로 그를 속 터지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한 마디로 어긋 까는 것이었다. 그렇게함으로써 어서 이 싸움을 끝내려는 의도였다. 일이 자꾸 커져야 우시장에서 흥정을 붙이며 사는 쇠살주에게 이로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네 놈하고 뭔 말을 더 섞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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