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란 / 소설가

 

지난 주일엔 어찌나 덥던지 남편을 따라 화양계곡의 깊숙한 품속으로 숨어들었다. 물에 발을 담근 채 싸 가지고 간 옥수수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깔아놓은 자리위로 개미떼가 드나드는데, 무심코 쓸어 치우면 또 기어오르고 또 쓸어치우고 이번엔 휴지로 눌러 죽이고…….

 

개미들은 마치 인해전술을 하듯 끊임없이 드나들며 먹이를 나르고 상처난 동료를 끌고가기도 한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개미도 나름대로 귀한 생명체인데 하는 생각이 들자 불현듯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소설 속에서는 중년의 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물질적 가치에 전도된 형식적 근대화의 부정적 이면을 날카롭게 꼬집고, 그 과정 속에서 삶의 진정성이 상실돼 가는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주인공은 두 번 결혼 실패후세 번째 남자와 서울로 올라가 현대화의 물결위에 놓인다. 그런 과정 속에서 허상의 너울을 쓴 채 분주히 돌아가는 사람들을 징그럽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삶의 진정성을 상실해가는 모습을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어느 학교나 학원을 찾아봐도 그것을 가르치는 곳은 없다며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얼마나 부끄러운 일상을 살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해왔다. 내가 걷고 있는 아스팔트 밑에 눌려 깔딱 숨쉬며 울부짖는 풀뿌리들, 대대로 관절염에 시달리며 등 한 번 펴지 못하겠다며 웅얼거리는 지렁이들의 아우성. 그리고 오늘 무심코 죽인 개미들의 통곡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 하다.

 

난 가난하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잘 생기지 못해 미안하지는 않았다. 공부 못했다고 해서 자부심을 잃지는 않았다. 그러나 무심한 내 손길과 발길로 알게 모르게 세상의 질서를 어지르지는 않았는지, 내 배 부르기 위해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지는 않았는지 새삼 두 손 모으게 된다.

 

제안하고 싶은 한 가지는 각 학교의 윤리시간에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줄 알도록 가르치는 순서가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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