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쉽게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어떤 분야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어려운 내용을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주는 일입니다. 남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은 그들의 이해 수준에 자신의 지식을 맞출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큰 능력임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들이 보통 사람들의 수준으로 자신의 전문지식을 풀어낸다는 것은, 그런 전문지식을 얻는 것과는 또 다른 능력입니다. 아는 게 많다고 해서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은 전문분야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전문분야에서 나오는 지식은 어렵습니다. 그 어려운 것을 교과서에서 배우는데, 정확히 말해 배운다기보다는 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치르면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그런 지식들이 학교에는 가득하죠. 역사 시간을 떠올려보십시오. 기억나는 것은 사람 이름과 그들이 쓴 책, 사건 이름뿐입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큰 이야기와 의미를 거느리고 있지만 그런 것들이 워낙 많다 보니 하나하나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역사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 이름과 책 이름 사건 이름을 빼놓고서 할 수 있을까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일이 역사에서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어떤 연구자가 발표한 것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에서 밝혀낸 사실들을 머릿속에 모두 집어넣은 다음에 그것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꾸민 것입니다. 마치 소설처럼 말이죠. 소설에는 각주가 달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실보다 훨씬 더 쉽게 다가오죠. 바로 이렇게 하여 원시인들이 문명인으로 접어들 무렵까지 인간의 초기 역사를 소설처럼 재구성하여 쓴 책이 이 책입니다. 그래서 쉽습니다. 유치원 아이들도 읽을 만큼 쉽습니다.

이 쉬운 문체는 글쓴이의 이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지은이는 옛 소련의 아동문학가입니다. 더 놀라운 건 그가 소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놀랍냐? 냉전시대에도 이 책은 번역되어 우리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고 쉬운 책이 동서 냉전의 벽도 넘어선 것입니다. 지은이는 미하일 일리인과 그의 부인 세갈입니다. 일리인의 본명은 일리야 야코블레비치 마르샤크입니다. 러시아 사람들 이름은 참 길고 어렵습니다.

지금이야 러시아 크레믈린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미국의 워싱턴 프랑스의 대선 판도까지 우리는 가만히 안방에 앉아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세상이지만, 1960년대나 1970년대에는 책이 거의 유일한 정보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동과 서가 사상으로 갈린 냉전체제에서 저 쪽의 세상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교류는 더더욱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글은 소련 사람이 지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은이 이름 없이 번역되어 독자에게 다가갔습니다. 글의 쉬움이 이념의 장벽까지 넘나든 것입니다. 지금 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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