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모반 하나로는 어림도 없네. 팔모반에는 돌잽이 물건만 올려놓고, 떡과 음식은 따로 차려야 하니 널찍하고 좋은 상을 보여주게나.”

“마침 황장목을 켠 송판으로 만든 돌상하고 가죽나무로 만들어 볼구리한 색이 도는 교자상이 있습니다. 도련님 나셔서 첨으로 여느 잔치인데 최상품으로 쓰셔야지요. 즈이 상전에서도 도련님 돌잔치를 위해 팔모반은 거저 드리겠습니다요!”

선심을 쓰듯 우갑 노인이 돌상 하나를 그냥 주겠다고 했다.

“교자상 하나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 팔모 돌상을 거저 준다고 하는가?”

노 마님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밑지더라도 한 번뿐인 도련님 돌상인데 뭐가 아깝겠습니까요.”

우갑 노인이 설레발을 쳤다. 노 마님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는 우갑 노인의 말에 매우 흐뭇해했다.

“그렇다면 손자 돌 복하고 식구들 해 입을 피륙도 보여주시게나!”

“피륙이라면?”

“돌 복인데 베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제일 좋은 비단을 보여주시게.”

“특별히 찾으시는 비단이라도?”

“혹시 운문대단도 있는가?”

노 마님이 운문대단을 물었다. 운문대단은 구름무늬가 새겨진 중국비단으로 아주 상품의 고급 비단이었다. 한양에서도 특별히 비단만 취급하는 전에서 숨겨놓고 팔 정도로 워낙에 값진 사치품이었다. 그런 물건을 시골구석인 충주의 윤 객주 상전에서 찾았다.

“당연히 있읍죠!”

“그런 귀한 것이 이런데  전에도 있단 말인가?”

노 마님은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풍원아, 운문대단 좀 가져오너라!”

우갑 노인이 잠자코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풍원이에게 비단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요!”

풍원이가 피륙창고로 달려가서 순식간에 노 마님이 찾던 비단을 가지고 나타났다.

“설마 했는데 정말 운문대단일세!”

노 마님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비단 필을 펼쳐보며 감탄을 했다. 펼쳐진 운문대단에서는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면 두둥실 날아갈 듯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있었다.

“대국 비단 중에서도 최고 상질입니다요!”

“그래 보이네. 이 옷이 우리 영상께서 북경에 댕겨 오시며 선물로 받아오신 본바닥 비단인데 이 대단이 더 좋은 것 같네!”

노 마님이 자신이 입고 있던 두루마기 단과 풍원이가 가지고 온 비단 필을 견주어보며 말했다.

“마님께서 흡족해 하시니 더할 나위 없습니다요.”

우갑 노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더 감격해 했다.

“그래, 이 비단 금은 어떻게 하시겠는가?”

노 마님이 운문대단 값을 물었다.

“함창명주 금만 쳐주시면 되겠습니다요”

우갑 노인은 중국에서도 귀한 물건인 운문대단을 조선의 함창명주 값만 달라고 했다.

함창은 상주목에 속한 현이었다. 함창현은 예전부터 함창명주로 조선에서는 이름난 비단 생산지였다.

“ 날 놀리는 겐가!”

노 마님이 우갑 노인의 말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성을 냈다.

“그게 아니오라 연유가 있어 헐하게 구한 물건이니 구문만 좀 붙여 드리는 것이옵니다.”

“그래도 그렇지, 중국 대단을 함창명주 금만 쳐달라니…….”

노 마님은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싸다고만 다 좋겠습니까요. 아무리 비싸도 물건이 제 주인을 못 만나면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충주에서 운문대단 주인은 마님입니다요! 더구나 경사에 쓰인다하니 지들은 더욱 기쁩니다요!”

우갑 노인이 가지껏 찬사를 했다.

“참으로 양심적이구먼. 무슨 연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싸게 구했다고 싸게 파는 장사꾼은 이제껏 보들 못했네. 언년아, 물목을 이리 내놓거라!”

노 마님이 몸종을 불렀다.

“마님, 여기 있사옵니다.”

몸종이 허리춤에서 척척 접힌 종이를 꺼냈다. “여기라면 믿고 물목을 맡겨도 될 성 싶네!”

노 마님이 물목을 적은 종이를 우갑 노인에게 내밀었다. 종이에는 손자 돌에 쓰일 물목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언뜻 어림잡아도 물목에 적힌 물건은 우마차 한 대로도 부족할 많은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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