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간 생활수준 비교 지표로 악용 우려
“의도가 무엇이든 가정사 공개로 상처 줄 수도”

부모의 직장 생활을 체험하는 학교 과제 때문에 사춘기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충북 청주의 한 중학교가 ‘부모님 직장 체험의 날’을 운영하기로 해 부모의 직업이 비교대상이 될 우려와 함께 위화감까지 조성되고 있다.

A 중학교는 오는 26일 전교생을 대상으로 부모가 일하는 직장을 찾아가 힘들게 일하는 것을 체험하고, 다양한 직업세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학교는 2015년부터 3년 째 ‘부모님 직장 체험의 날’을 운영해오고 있다.

학교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부모 직장 체험을 원칙으로 하되 여의치 않은 학생은 친척과 지인 직장을 체험하라고 공지했다.

학생들은 부모의 직업체험을 하고, 사진도 찍어서 직업체험보고서를 작성, 담임 교사에게 제출하게 된다. 학교측은 체험 내용을 검토한 뒤 우수작품에 대해서는 시상할 계획이다. 

이 같은 취지에서 학교는 체험 행사를 도입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가정환경이나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지표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직책과 연봉, 학력 등 지나치게 자세한 사항까지 기재될 수 있어 학부모들도 부담을 느낀다는 지적이다.

예전 학교에서 조사해 오던 ‘가정 형편(재산) 조사’의 현대판인 셈이다.

이 학교의 일부 학부모들은 이 같은 직업체험에 부담스러워하거나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부모가 정규직이고 대기업의 임원인 아이들은 자신감 있게 직업체험을 하고, 사진도 찍어서 직업체험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반면, 비정규직에 종사하거나 실직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나 기초생활수급자의 자녀들, 또는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은 직업체험보고서를 작성할 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당히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원치 않은 가정사가 공개돼 아이들 가슴에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학부모는 “부모 직장체험이 취지가 좋다 하더라도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부모의 직업이 비교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충북도교육청도 학교 자체적 체험활동을 권장하고 있으나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학부모 직장체험’에 대해 자제하라는 의견을 일선 학교에 보내고 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서 학부모 추천을 받아 학생들이 단체로 직장체험을 하는 체험은 진행되고 있으나, 학생 전체가 부모의 직장 체험을 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판단, 자제하고 있다”며 “여러 문제점들이 도출돼 각 학교에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 학교 관계자는 “부모님 직장에서 하고 있는 체험하며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느끼고, 다양한 직업세계를 탐험해 보는 것이 직장체험의 취지”라며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활동이지만 편부모 및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등 여건이 되지 않는 아이들은 하지 않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강제성을 띤 체험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학생들만 체험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유도했다”고 말했다.

부모의 직업을 체험하면서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을 느끼고 다양한 직업에 대한 느껴보자는 좋은 취지에서 하는 ‘부모 직장체험’이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지 않도록 조금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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