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칼럼]정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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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매일
  • 승인 2017.05.2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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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석 한국교통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사회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처럼 스스로 정화되면서 순환한다. 그러나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용되므로 우리가 노력해서 그 순환의 기간을 단축시켜야 한다. 종교가 주장하는 착한 사회는 수천년간 노력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진보세력들이 목표로 세운 정의사회도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선과 정의로는 더 이상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오랜 역사가 증명했다. 선과 정의가 실패한 이유는 신의 존재를 갑론을박하듯 선과 정의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갑론을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과 정의는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관점에 따라서 의견이 달라지므로 분파와 분쟁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종교는 종파가 생기고 정당은 당파가 생겨서 결국은 분열하므로 오랜 역사 동안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진보와 보수는 물론 진보 자체에서도 항상 싸움이 일어나므로 개혁이 잘 안 된다.

그러나 정직은 단순해서 갑론을박할 필요가 없다. 누구도 자신의 행위가 진정한 정의인지 선행인지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누구나 자신이 하는 행위가 정직인지 아닌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으므로 정직은 시시비비에 걸릴 일이 없으며 사회를 정화하는 힘이 있다. 우주 만물은 모습만 다를 뿐이며 모두 본질은 같은 것이므로 모습과 상관없이 만물은 평등하다. 선과 정의는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공간과 시간이 변하면 함께 변한다.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선이라고 생각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선이 아니다. 쿠네타는 일으키는 순간에는 정의처럼 생각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정의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와 같이 선과 정의는 정체성이 모호하지만 평등과 정직은 절대적인 개념이므로 상황에 따라서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

인간사회도 이와 같다. 정의사회가 추구하는 목표가 자유와 평등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자유와 평등은 대등한 개념이 아니다. 사람이나 물질에게 자유를 부여하면 서로 자유를 많이 가지려고 다툼을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두가 평등해지는 것이 자유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러므로 자유는 자유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따라서 정의사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등이다. 그리고 정의는 정직을 기본으로 할 때 구현되므로 정직은 평등을 이루는 근본적인 방책이다. 정직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며, 그것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하게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이다. 정직은 단기적으로 보면 손해를 보는 방법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정직을 행하면 행하는 자에게 일시적으로 불리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유리하다. 정직과 부정직이 일대일로 싸우면 정직이 질 수 있으나 정직이 많이 모이면 그 힘은 무한대로 커진다. 그러므로 학교 교육이 지식 위주의 교육보다 정직 위주의 교육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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