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부터 풍원이는 상전의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이전처럼 설렁설렁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드나들고 어떤 물산들이 들고나는지를 눈여겨 살폈다. 그러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로이 보이기 시작했다.

풍원이는 일단 윤 객주 상전에 어떤 물건들이 쟁여있는지 그것부터 익혔다. 자신이 전에서 쫓겨난 원인이기도 했지만 손님이 기다리지 않게 원하는 물건을 바로바로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어떤 물목들이 상전의 어느 창고에 있는지를 확실하게 익히고 있어야만 했다. 한시라도 빨리 장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다른 일을 건성으로 하며 시간을 죽일 때는 하루해가 여삼추 같더니만, 할 일이 생겨나자 하루해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풍원이가 틈틈이 창고 일을 하며 느낀 것은 물산들의 보관 방법이었다. 손님들이 찾아오는 전의 물건들은 눈에 뜨이도록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었지만, 상전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드나드는 창고는 뒤죽박죽 쌓여있어 어떤 물건들이 어디에 처박혀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상전에서 일을 해온 사람이 아니면 말만 듣고 물건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풍원이가 망건통을 찾지 못해 구박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풍원이는 창고에 어지럽혀있는 물산부터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우갑 노인을 찾아갔다.

“어르신, 말씀드릴게 있어 왔습니다요.”

“뭐냐?”

“창고를 정리할까 하는데 해도 될는지요?”

“니깟 눔이 뭘 안다고 함부로 창고에 손을 댄단 말이냐?”

우갑 노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물산 창고를 보다보니 너무 어수선해서 찾기 편하게 정리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망건통도 하나 못 찾는 놈이 뭔 창고를 정리해. 옛다!”

우갑 노인이 쇳대 꾸러미를 던져주었다.

풍원이는 그날부터 창고를 정리했다. 창고별로 곡물창고, 특산물 창고, 어물 창고, 바깥살림 창고, 안살림 창고, 세간 창고, 그릇 창고, 잡화창고……등등, 보관할 물목을 정하였다. 그리고 각 창고 안에 물품들은 종류별로 구분하여 탁자와 선반에 정리했다. 그리고는 순서를 매겨가며 자리마다 일일이 물품 이름을 적어 붙였다. 이렇게 되자 창고 문만 보아도 이 안에는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창고 문을 열면 안에는 물품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어 초자라도 쉽게 물건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다 보니 은연중에 윤 객주 산전에서 취급하는 물목들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물품들 이름도 익히게 되었다. 물품 이름들을 알게 되자 일을 하는데도 재미가 붙었다. 전에서 갑자기 어떤 물품을 가져오라는 전갈이 와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물품을 찾아 전으로 달려갈 정도가 되었다.

“제법이구나!”

우갑 노인이 처음으로 칭찬을 했다. 풍원이가 윤 객주 상전으로 온 후 처음이었다. 풍원이는 고마움에 가슴이 찌르르 울리며 눈물이 찔끔 나왔다.

“너 진태를 찾아갔었더냐?”

“예?”

느닷없이 우갑 노인이 도진태 선주 이름을 말했다. 풍원이가 당황하여 되물었다.

“도진태를 만났냐 이 말이다.”

“녜.”

무슨 큰 비밀이 들통 나기라도 한 것처럼 풍원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힘들더냐?”

“아닙니다요!”

“뭐든지 다 고비가 있는 법이다. 열심히 해 보거라.”

우갑 노인이 풍원이를 다독였다. 우갑 노인의 그 말에 풍원이는 새로운 힘이 솟구쳤다.

풍원이가 물산 창고를 관리하며 사람들이 가져오는 물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그 물건들이 어떤 경로로 들어오고 나가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충주 윤 객주 상전에서는 전을 열어 일반 사람들에게 직접 산매도 하고, 장사꾼들에게 물건을 대주는 도매를 했다. 또 때때로 강을 타고 오는 경강상인들과 대량으로 물산들을 거래하기도 했다. 전으로 오는 손님들에게는 사들인 물건에 이익금을 붙여 팔면 되었지만, 장사꾼들과의 거래는 좀 복잡했다. 장사꾼들은 대부분 향시를 도는 장돌뱅이들이나 보부상들이었다.

그들은 윤 객주 상전에서 물건을 떼다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 지역의 산물들과 맞교환을 해왔다. 그러니 장사꾼들이 윤 객주 상전에서 가져간 물산에 대한 지불은 현물이었다. 그런데 각기 다른 물품들을 어떤 기준으로 맞교환을 하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오늘부터 전에서 일하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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