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의 수필가

아파트 화단에 분홍색으로 피는 꽃이 있다. 너무 작아서 가만히 앉아 바라봐야 한다.

아침햇살에 눈이 부신지 이슬도 반짝 빛이 납니다. 살짝 다가가 손우산을 만들어 준다. 그러다 꽃잎을 건드린다. 분홍색 꽃물이 손안으로 들어온다. 잎이 하트모양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를 때까지 난 꽃만 본다. 그러다가 이름을 알고부터 꽃의 전부를 바라보며 마주한다. 꽃 이름이 꽃보다 더 좋을 때가 있다.

그 곁에는 봉숭아꽃도 피어있고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분꽃도 있다. 분꽃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마치 토라진 아이 같다. 그렇지만 까맣게 익어 가는 씨앗은 어제보다 많이 달고 있다.

백일홍은 뒤쪽에 피어있다. 꽃이 화려하지 않아 눈에 먼저 들어오진 않지만 맏언니처럼 듬직하게 피어 있다. 그 곁에 맨드라미꽃이 한창이다.

어린 시절 앞마당이 생각난다. 엄마 얼굴도 떠오르고 친구들도 가만가만 보인다. 이젠 이름도 아득하다. 잊고 살아온지가 얼마 던가. 꽃의 이름을 불러보듯 그리운 얼굴들을 불러 본다.

여름 꽃에는 그리움이 숨어 핀다. 그래서 더 넉넉해지는 아침이 좋다.

꽃밭에 앉아 있으면 꽃밭을 가꾸는 이의 손길이 궁금하다. 물을 줄 때 튀어 오른 흙물이 이파리에 묻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와 뽑아 놓은 잡초가 아직 생기를 잃지 않았을 때는 더욱 보고 싶다.

난 한번도 꽃밭을 위해 정성을 쏟은 적이 없다.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주인이 있으니까 라는 생각에서다. 난 그렇게 너와 나를 구분 지어 놓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에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와 같은 일이 반복되겠지. 그러나 오늘은 내 곁에 있는 소리와 사물과 사람들에게 조금 더 다가서려고 한다.

활짝 핀 꽃들이 나를 바라본다. 나도 쳐다본다. 이렇게 서로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기분을 좋게 한다. 참 좋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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