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갑 노인을 아시나요?”

“아무렴!”

“어떻게 우갑 노인을 아시지요?”

풍원이는 도 선주가 우갑 노인을 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비질만 했다 해도 일 년을 거기에 있었으니 윤 상전이 어떤 곳인 줄은 알고 있겠지?”

어떻게 우갑 노인을 아느냐는 물음에 도 선주는 딴소리를 했다.

“마당만 쓸고 창고에서 거적때기만 치웠는데 저 같은 놈이 뭘 알겠어요?”

“그저 잡일만 했단 말이냐?”

“그럼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이 녀석아, 내가 우갑이라 해도 속이 터졌겠다! 풍원이 너, 배 타고 일할 때는 그러지 않았지 않느냐?”

“뭐가요?”

“그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네가 먼저 일을 찾아 앞장서곤 하지 않았느냐?”

“그땐 그랬지만 윤 객주 상전은 워낙에 커서 제가 아는 게 있어야지요.”

“뱃일은 네가 뭘 알아서 그리 했느냐?”

“그건 그러네요.”

풍원이도 그 대목에서는 도 선주의 말에 수긍을 했다.

“큰 장사든 작은 장사든 장사를 하려면 기본이 뭐겠느냐. 물론 나 같은 떠돌이 뱃꾼하고 윤 상전 같은 앉은장사하고는 좀 다르긴 하겠지만 원리는 한 가지 아니겠느냐.”

“그게 뭔가요?”

“내가 지니고 있는 물품부터 아는 것이 먼저 아니겠느냐? 남에게 물건을 팔려면 내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그 종류를 알아야 남에게도 권할 게 아니냐?”

“그걸 누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뭘 알려준단 말이냐?”

“어떤 물산이 있는지, 어느 창고에 있는지 정도는…….”

“살림에도 쪽박 살림이 있고 되박 살림이 있고, 말 살림이 있다. 장사도 마찬가지다. 윤 상전은 충주에서 으뜸가는 상전이다. 윤 상전에 있는 총 물산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 아마 물목을 적어놓은 치부책만 해도 몇 지게는 될 거다. 그걸 무슨 수로 때마다 일일이 다 알려줄 수 있단 말이냐? 알려주느니 직접 하는 게 덜 성가시겠다.”

“그래도…….”

풍원이는 도 선주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을 누가 일일이 알려주겠느냐? 너 스스로 익혔어야지. 너는 서운하겠지만 우갑이로서는 당연한 일이지. 나 같은 배 장사는 싣고 다니는 물산이 얼마 되지 않으니 손바닥 들여다보듯 금방 빤하게 보이지만 그런 큰 장사는 어디 그렇겠느냐. 그러니까 틈틈이 물산을 익히라고 시간을 준 것 아니겠느냐. 그깟 잡일이나 하라고 일 년이란 시간을 주었겠느냐?”

도 선주 말처럼 여차하면 풍원이가 청풍으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으니 윤 객주 상전에서 알아서 스스로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윤 객주 상전이 워낙에 크니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시키는 일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도 선주의 말을 듣고 보니 남의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자신 생각에만 빠져 원망질만 했던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도 선주 어르신,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렵니다.”

풍원이가 다시 윤 객주 상전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제 멋대로 나온 놈을 누가 받아주기나 헌다더냐? 윤 상전이 그리 호락호락한 덴 줄 아느냐?”

“받아줄 때까지 대문간에 꿇어앉아서라도 용서를 빌겠습니다!”

풍원이가 마음을 다져먹고 벌떡 일어섰다.

“날이 곧 어둑해질 텐데, 오늘은 예서 자고 낼 아침 일찍 가거라.”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보며 도 선주가 풍원이를 잡았다.

“아닙니다. 지금 당장 돌아가렵니다!”

“그래, 잘못을 알았다면 바로 받아들이고, 결심을 했다면 머뭇거릴 필요가 없지!”

“어르신, 무탈하세요!”

“오냐. 윤 객주가 너를 상전으로 데려갔을 때는 무슨 생각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니 일은 약 빠르게 하고, 맘은 진득하게 먹고 견디거라.” 도 선주가 문을 나서는 풍원이를 다독거리며 당부했다. 풍원이가 윤 객주 상전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종일 보이지 않았을 텐데도 상전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주 잠깐 동안 풍원이는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곧 지워버렸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 일만 묵묵하게 하면 그뿐이다 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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