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풍원이를 만났는데도 도 선주는 어제 본 듯 낯설어하지 않았다. 도 선주의 환대에 풍원이는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해졌다.

“어르신 그동안 무고하셨는지요?”

“인사는 그만두고 어서 안으로 들거라!”

풍원이가 마당에서 인사를 차리려하자 도 선주가 말리며 마루로 올라오라고 권했다.

“어르신은 여전히 뱃일을 하고 계시는지요?”

“그럼 배운 도둑질이 그건데 달리 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 그런 너는 뭘 하고 지냈느냐? 내가 청풍장에도 발길을 했었지만 보이지 않던데…….”

“제가 청풍장을 떠난 이후에 발길을 하셨나 봅니다.”

“너와 헤어져 배를 새로 짓다 보니 가을이 되었고, 그러다 강물이 얼어붙어 겨우내 묶여있다 해를 넘겨 이듬해 초가을쯤 마침 청풍이 갈 일이 있어 들렸었지.”

“그렇다면 그땐 제가 청풍에 없을 땝니다.”

“그럼 청풍을 떠나 그동안 어디에 있었단 말이냐?”

“충주에요.”

“충주라면 여기서 지척인데,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째 그렇게 통 왕래도 없었단 말이냐?”

풍원이가 충주에 있었다면서도 한 번 들르지도 않았다는 것에 도 선주는 서운한 눈치였다.

“남 집살이를 하는 놈이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하기야 그렇긴 하지. 그래 뉘 집에 있느냐?”

“윤 객주 상전에 있었습니다.”

“충주 윤왕구 객주를 말하는 것이냐?”

도 선주가 윤왕구 상전에 있었다는 말에 되물었다. “네.”

풍원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시라?”

“네가 그 상전에는 어떻게 들어갔느냐?”

“이젠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도 선주의 물음에 풍원이는 그동안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뱃일을 그만두고 청풍장에서 채마전을 한 일, 윤왕구 객주를 만나 그의 상전으로 들어가게 된 내력, 그 후 일 년간 비질만 한 이야기, 그러다 겨우 전에서 일을 하다 우갑 노인에게 밉보여 다시 허드렛일을 하다 뛰쳐나온 이야기를 낱낱이 했다.

“선주 어르신, 사람을 부리려면 뭐라도 알려주고 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

풍원이가 정말로 속상했던 부분을 도 선주에게 털어놓았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이냐?”

“선주 어르신을 따라 다니며 장사를 배우려 합니다.”

“내가 받아주지 않으면?”

“정 할 일을 못 찾으면 청풍으로 다시 돌아가지요. 허름하더라도 내 전도 있고 맡겨둔 쌀도 수 십 석 있으니 그걸 밑천 삼아 채마전이나 다시 하지요. 윤 객주 상전이 아니면 장사 할 곳이 없겠어요!”

풍원이는, 언제든 돌아오라던 청풍장터 홍판식을 생각하며 말했다.

“풍원아, 그런 생각으로 윤 상전에 들어가 일을 했단 말이냐?”

도 선주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주 아니라고도 할 순 없겠지요.”

풍원이도 부인은 하지 않았다.

“너도 은연중 되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그리 다급하지도 않았고, 또 이렇게 말도 없이 뛰쳐나온 것은 아니냐?”

도 선주 이야기를 들으며 풍원이는 지난 일들을 되짚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김 참봉 집을 나와 청풍나루에서 도 선주를 만나 일을 시켜달라며 매달렸을 때나 청풍장터 곡물상 홍판식에게 전 귀퉁이를 빌려달라고 떼를 쓸 때처럼 절실하게 윤 객주 상전에서 일을 했던 것은 아닌 것도 같았다. 그렇다고 꾀를 피거나 눈을 피해 요령을 피우지는 않았다.

“그래도 억울하고 서운합니다. 뭐라도 알려주고 익힌 다음에 시켜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풍원이는 말도 없이 떠나온 것보다 몰아세우고 덮어씌운 우갑 노인의 행태에 더 화가 났다. 자신에게 장사를 가르쳐주겠다며 데리고 간 윤 객주도 서운했다.

“너라면 네가 부리는 아랫사람이 언제든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일을 가르치고 싶겠냐?”

“저는 그런 내색을 전혀 보인 적이 없는 데도요?”

“이 녀석아, 사람들 눈치를 보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여. 너 같은 풋것들은 찍어봐야 알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척 보면 똥인지 된장인지 다 안다. 아마도 우갑이는 너의 그런 마음을 다 꿰뚫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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