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망건통은?”

풍원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갓집하고 망건통도 구분 못하는 놈이 무슨 장사를 배운다고. 당장 나가거라!”

우갑 노인의 질타에 풍원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두커니 서있기만 했다.

“다시 갔다 오겠습니다요. 탕건통은 어디에 있는지요?”

풍원이가 우갑 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앓느니 죽는 게 낫겠다. 상전의 많은 물목을 일일이 다 알려주랴? 맹추 같은 놈!”

우갑 노인이 풍원이를 노려보며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알려만 주시면 제가 냉큼 다녀오겠습니다요.”

“그만 두거라! 네 놈을 시키느니 저 가이를 시키는 게 낫겠다.”

우갑 노인이 전 앞에 널브러져 졸고 있는 누렁이를 가리키며 비아냥거렸다.

“아니, 상것들이 사람을 세워두고 뭣들 하는 짓거리냐?”

두 사람이 하는 양을 보고 있던 선비가 더는 기다릴 수 없었는지 버럭 화를 냈다.

“송구합니다요.”

“도대체 망건을 팔겠다는 것이냐, 말겠다는 것이냐!”

“지가 얼른 가져와 대령할 테니 노여움 푸시고 잠시만 기다리시면…….”

우갑 노인이 죽을죄라도 지은 것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설설 기었다.

“그만 두거라, 이놈아! 불상놈 주제에 감히 양반을 우롱하는 것이더냐? 탕건통이 이눔의 집구석 밖에 없다더냐? 고얀 놈들!”

선비가 우갑 노인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부르르 전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제 놓쳐버린 손님은 어쩔 터냐? 사람 입만큼 무서운 게 있는 줄 아느냐? 발 없는 소문이 천리를 가는 법이다! 윤 객주 상전에 갔더니 주인도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그냥 왔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 상전을 어찌 생각하겠느냐?”

큰길로 사라지는 선비의 뒤통수를 보며 우갑 노인이 풍원이를 마구 몰아세웠다. 그런 우갑 노인이 풍원이는 야속했다. 억울했다. 장사를 가르쳐주겠다고 데리고 와서 어느 누구 하나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일 년 내내 허드렛일만 시키다 겨우 전에서 일을 해보라고 해놓고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는 어느 창고에 어떤 물건이 있다고 일러주지도 않고는 무조건 물건을 가져오라니 그런 억지는 없었다. 그 많은 창고에서 탕건통이 어디 처박혀있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탕건통을 찾느니 차라리 처녀가 애를 배는 것이 쉬울 듯싶었다. 사람에게 일을 시키려면 뭐라도 알려주고 부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무엇하나 아는 것이 없는데 무조건 시키기만 하면 어쩌라는 것인가. 그러니 풍원이 자신이 실수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도 우갑 노인은 풍원이를 몰아붙이고 닦달만 했다. 정말 서운하고 억울했다. 소경 눈탱이 때리듯, 이것은 분명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갈구려는 수작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식충이 같은 놈! 한 해가 다 되도록 상전 밥을 먹은 놈이 그동안 뭘 한 것이더냐?”

풍원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갑 노인은 계속해서 핀잔을 멈추지 않았다. 풍원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시원하게 풀어놓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우갑 노인에게 대들었다가 혹여라도 눈밖에라도 나면 어쩔까 싶어서였다. 풍원이에게는 윤 객주 상전에서 장사를 배우게 된 것이 천행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 줄 마지막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며 윤 객주 상전에서 일을 배우면 큰 장사꾼이 될 것 같은 믿음도 생겼다. 그런 생각을 하며 우갑 노인이 험담을 퍼부어도 꾸역꾸역 견디고 있었다.

“넌, 애당초 싹수가 노랗다. 장사는 무슨 장사, 당장 나가서 허드렛일이나 하거라!”

우갑 노인이 다시 허드렛일이나 하라며 풍원이를 전 밖으로 쫓아냈다.

풍원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서운하고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자신이 너무 보잘 것 없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겨났는지를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러니 곧 자신을 다시 전으로 부를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갑 노인은 풍원이를 전으로 나와 장사를 도우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다. 풍원이는 윤 객주 상전 안팎을 돌아다니며 다시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상전에서 그 누구도 자신에게 장사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스스로 일을 찾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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