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496년 춘추시대. 오나라 왕 합려가 월나라 구천의 공격을 받아 크게 상처를 입었다. 결국 상처가 덧나 죽음을 앞두고 아들인 부차를 불러 유언을 남겼다. “너는 결코 이 아비의 원수인 구천을 잊지 마라!”

부차는 왕위에 오르자 잠자리에 들 때마다 가시가 많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그리고 문 앞에 사람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하였다. 그렇게 부차는 매일 밤마다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원수를 되새겼다. 얼마 후 부차는 아버지의 복수를 갚기 위해 전군에 출정 명령을 내렸다. 월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패배한 구천은 화해를 청하였다.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 왕의 신하가 되길 간청합니다. 이에 월나라의 땅을 모두 대왕에게 바치겠습니다!”

부차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구천으로 하여금 오나라로 와서 자신을 모시라고 일렀다. 구천이 도착하자 부차가 말했다. “너는 내 아버지의 원수이나 목숨만은 살려둔다.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무덤 옆에서 지내며 말을 먹이도록 하라.”

구천은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3년 동안 구천은 천한 일을 하는 치욕을 겪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차가 구천을 불렀다.

“너는 이제부터 내 마차를 몰도록 하라.”

부차가 외출할 때면 구천은 그를 위해 수레를 몰았다. 그 자세가 참으로 지극정성이었다. 하루는 부차가 병이 나고 말았다. 이때 구천이 부차를 간호하는데 그 정성이 또한 참으로 극진하고 감동적이었다. 부차는 병이 낫자 구천을 귀국하도록 석방하였다. 그때 신하인 오자서가 구천을 죽이지 않으면 불행을 당할 것이라고 몇 번을 상소했으나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전의 아버지의 원수라는 증오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상소를 올린 오자서가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그날부터 잠자리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았다. 앉거나 눕거나 할 때마다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새기며 이전의 치욕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하였다. 10년의 세월이 흐르자 월나라는 눈부시게 달라졌다. 인구도 늘었고, 경제력도 향상되었고, 무엇보다 군대가 강성해졌다. 어느 날 구천이 군대의 출정을 명했다. 자신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이때 오나라 부차는 아무런 방비도 없었고 군대 또한 형편없었다. 그러니 구천의 기세를 당해내지 못했다. 결국 부차는 쫓기던 중에 자살하고, 마침내 오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세가’에 있는 이야기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장작더미 위에서 자고 쓸개를 맛보며 결의를 다진다는 뜻이다. 이후로 실패나 좌절을 겪고 다시 일어서려는 단단한 각오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싸움에서 승자는 경쟁자가 다시는 덤비지 못하도록 철저하고 냉혹하게 꺾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경쟁자에게 화해를 청하는 것은 보복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어리석은 승리자는 비극을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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