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고대국가에서 장수가 전쟁에 나서려면 요구되는 능력이 여러가지였다. 통솔력, 용맹함, 지혜 등이 그것이다. 이것 외에 장수의 자질이라면 적의 정황을 잘 아는 재주였다. 적의 정황은 세작, 즉 간첩을 활용해야만 알 수 있었다.

1130년 송(宋)나라의 유예(劉豫)는 같은 편인 장수 관승을 살해하고 금나라로 투항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금나라 대제 지역의 황제로 책봉되었다. 송나라는 고민스러웠다. 금나라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유예가 최대의 장애물이었다. 송나라의 내부 정보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송나라 군대는 장군 악비(岳飛)가 통솔하고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이 풀어놓은 간첩으로부터 한 가지 정보를 듣게 되었다.

“유예는 금나라 장군 점한과 아주 절친합니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를 아주 질투하는 자가 있습니다. 금나라 군부의 우부원수 김올술입니다.” 때마침 악비 군영에 금나라 간첩 하나가 사로잡혀왔다. 알고 보니 김올술이 직접 파견한 자였다. 악비는 그 간첩을 자신의 막사로 데려오라 했다. 그리고 짐짓 사람을 잘못 본 것처럼 꾸며, 다짜고짜로 간첩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네 놈은 장빈이 아니더냐? 어째 유예에게 편지를 전달하지 않은 것이냐? 내 명령을 어기면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네놈이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올 겨울에 유예와 연합하여 금나라를 치기로 한 것이 지금 늦어지고 있지 않느냐.”

간첩은 악비가 사람을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장빈인 것처럼 행동하면 분명 살아 돌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때 소신이 편지를 전달하지 않은 것은 현지 사정이 악화되어 조금의 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면 목숨을 걸고 반드시 전달하겠습니다.”

그러자 악비가 간첩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면서 말했다.

“지난 일은 용서할 테니, 이번에 유예에게 가거든 거사 날짜를 분명히 받아오도록 해라!”

그런 다음 간첩의 한쪽 허벅지를 도려내어 그 안에 편지를 넣은 다음 밀랍덩이로 봉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주의를 주었다.

“절대, 기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간첩은 금나라로 돌아가자마자 이 편지를 바로 김올술에게 갖다 바쳤다. 편지를 본 김올술은 너무도 놀라 즉시 금나라 태조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태조는 사실 확인도 해보지 않고 당장에 유예를 잡아들이라 명했다. 유예는 변명 한 마디 해보지 못하고 대제 지역 황제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는 ‘송사(宋史)’에 있는 이야기이다.

고심사단(故尋事端)이란 일부러 말썽을 일으켜서 본래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을 뜻한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데 방법이 없다.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죽는 일 밖에 없다. 그럴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억지로 말썽꺼리를 만든다. 그러면 그 속에서 해결 방법을 찾게 된다. 의심나거든 한 번 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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