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출퇴근하는 길에 포장 공사가 한창이다. 낡은 포장을 걷어내고 매끈한 아스팔트길이 돼가고 있다. 스케이트를 타고 빙판을 달리듯 자동차도 새 길을 미끄러지듯 달릴 것이다. 덕분에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한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어딜 가든 포장된 길이고 길은 어디로든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골목 집 앞까지 우리의 길은 먼지 하나 날리지 않는다. 흙 한 줌 만져보기 어렵다.

시골이라도 다를 건 없다. 나의 고향, 슈퍼도 없고 버스도 가뭄에 콩 나듯 빈 차로 왔다 빈 차로 나가는 촌동네에도 흙의 감촉을 느끼기가 어렵다. 비만 오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처마를 따라 황톳빛 작은 구멍들이 나곤 했었다. 마당엔 강이 생기고 비가 그치면 다시 강을 메우고 질퍽한 길을 피해 깡충깡충 뛰기도 했다. 진흙에 발이 묶인 신발을 보고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며 물어오기도 했다.

언제였을까. 길이 포장되던 때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마을 숙원사업이었을 것이다. 비가와도 태풍이 불어도 꿈쩍하지 않는 포장길. 자동차가 쌩쌩 달려도 먼지 하나 날리지 않는 포장길. 중학교 버스를 타고 오가는 길 버스 뒷자리에 앉아 디스코팡팡을 타듯 이리저리 길의 리듬에 맞춰 몸이 흔들렸던 길도 포장이 됐다.

정선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삼척을 간 적 있다. 이차선 작은 길이 백두대간 산허리를 칭칭 에워싸고 이어져 있었다. 오가는 차량은 많지 않았지만, 화물을 실은 대형 트럭이 여럿 오가고 있었다. 트럭의 힘에 못 이겨 아스팔트가 밀가루 반죽처럼 겹쳐져 있었다. 문득, 이 산허리도 조만간 구멍이 나겠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편리함을 위해 산을 깎고 터널을 뚫고 길이 포장된다. 1970년, 일제강점기의 치욕을 헐값에 넘기고 그 돈으로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현재는 전국이 고속도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대통령을 많이 배출한 남쪽은 별별 고속도로가 많다. 남쪽 나라가 포화상태가 오자 중부고속도로, 서해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가 뚫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포화상태가 되자 고속도로와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새로운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시작했다.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는 건설사에 길이 남아야 할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상주에서 영덕까지 연결됐다는 것이다. 산 넘고 물 건너 안동 가던 길도 이젠 식은 죽 먹기가 됐다. 대천이나 군산행도 마찬가지다. 넉넉한 기름과 통행료만 준비하면 끝이다.

현재도 이런저런 길이 건설 중이다. 정말 필요한지 모를 일이다. 청원에서 오창으로 경부와 중부를 연결하는 도로가 건설 중이고 청주~공주 간 고속도로가 확정됐다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자본은 끊임없이 새로운 건설을 시작한다. 우리 생명의 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든 4대강 역시 파괴 본능의 자본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이 무시무시한 자본의 건설 기계는 언제까지 산의 허리를 끊고 심장에 구멍을 낼 것인지 그 끝을 알 수 없다. 더 이상 길이 아닌 곳이 없을 때까지 진행될지도 모른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듯 수많은 길은 우리에게 통행료를 요구한다. 우리는 자본으로 시간을 사고 그 시간을 이용해 나들이를 가고 소비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본의 힘은 은밀하고 위대하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