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님, 그렇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 서방님은 한 가지 일로 두 사람을 살리는 길이고, 사람들은 서방님의 후덕함을 칭찬할 것이고, 장석이 형은 평생 서방님의 은공을 잊지 않을 것이니 꿩 먹고 알 먹고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요?”

풍원이가 김주태를 설득했다. 주태가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었다.

“장석이 형! 이리와서 나하구 어르신들께 약주 한 잔씩 올려요!”

풍원이가 마당 한쪽에 뻘쭘하게 서 있던 장석이를 불렀다.

“그래, 얼른 와 어른들한테 한 잔씩 돌리그라!”

김주태가 떠나자 기춘이가 기가 살아 소리쳤다.

“제 술은 아니지만서도 돌리는 거야 못 하겠남유?”

장석이가 술병을, 풍원이는 술잔을 들고 좌중을 돌며 술을 권했다.

“아저씨들, 제 꼬맹이술 받으시고 이제부턴 저도 온 일꾼으로 써주시우!”

“반 일꾼 신세 면하려거든 우리한테 잘 보여야 헌다.”

“예! 예! 잘 좀 봐줍시유.”

장석이가 연신 굽신거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눔아, 술만 따른다고 어른이 되냐? 어른이 되려면 힘이 있어야지, 안 그런가? 여보게들!”

“암 그렇구 말고. 그럼 한번 슬슬 시작해 볼거나?”

“장석이 넌 꼬맹이술도 안냈으니 대신 저어기 돌절구를 서너 보만 옮겨 보거라!”

술을 먹고 있던 마을 어른이 히죽히죽 웃으며 디딜방아 옆에 놓여 있는 돌절구를 가리켰다.

“저 돌덩어리를유?”

장석이가 깜짝 놀랐다.

“이눔아, 어른이 되면 저 돌덩어리보다 더 힘든 일이 줄줄이다.”

“알겠구먼유!”

장석이가 저고리를 훌러덩 벗어던지며 성큼성큼 디딜방아 옆에 있는 돌절구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힘깨나 쓰는 장정 서넛이 달려들어도 꿈쩍 않을 돌덩어리를 아무리 우람한 체격을 가진 장석이라 해도 애당초 가당치도 않는 일이었다. 장석이는 꿈쩍도 않는 돌절구에 매달려 용을 썼다. 장석이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애쓴다!”

“온 일꾼 되기 심들지, 이눔아!”

“끙끙- 으아아, 빵-”

장석이가 용을 쓰다 힘에 부쳐 헛방귀까지 꿨다.

“하하하하-.”

이를 구경하던 사람들 입에서 한꺼번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석이 형! 저리 비켜!”

그때 풍원이가 장석이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러더니 긴 서까래를 지렛대 삼아 돌절구 밑구멍에 쑤셔 넣고 힘을 썼다. 돌절구가 기우뚱하더니 ‘쿵’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형, 나하고 같이 이걸 굴리자!”

풍원이가 장석이를 불러 쓰러진 돌절구를 공 굴리듯 굴렸다. 둘이 힘을 합치니 서너 보가 아니라 마당 끝까지라도 갈 수 있었다. 둘은 돌절구를 멋대로 굴리다 다시 제자리로 옮겨가 본래대로 세워놓았다. 사람들이 풍원이 꾀에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풍원아, 네 덕에 나도 온일꾼 대접 받게 됐다. 고맙다!”

“아녀, 형이 안 도와줬으면 혼자서는 못할 일이었어!”

“풍원아, 우리 오늘부터 동무하자?”

“그래 형!”

풍원이는 김 참봉이 꼬맹이술을 내던 그날 장석이와 친구의 약속을 맺었다.

“여봐, 팔돌이 자네도 오늘부턴 큰 소 한 마리 생겼네 그려.”

“팔돌이도 이젠 신세가 좀 피게 됐구먼!”

꼬맹이술 잔치에 모였던 마을사람들이 모두들 팔돌이를 부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안에 큰 소나 다름없는 일꾼이 생겼으니 팔돌이로서는 천군만마를 거느린 장수도 부럽지 않았다. 올해부터는 팔돌이도 온 일꾼이 된 장석이 덕분에 어깨에 길마를 지고 쟁기질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팔돌이 신역은 일 년 내내 고되기만 했다. 심어 가꾸고 거둬들이는 일은 등골이 빠지더라도 견디며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땅을 가는 일은 그렇지 않았다. 파종은 며칠이라도 날짜를 놓치게 되면 거둬들일 때 그만큼 소출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힘 좋은 소를 빌려 땅을 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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