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벼르고 별러왔는 데 오늘 아주 작신 패딱아 버려!”

머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풍원이에게 몰매를 퍼부었다.

“죽으로 가만히 있지, 왜 우리 염장을 지르냐?”

“아제들, 김 참봉 어른은 내게 부모보다도 귀한 어른이오! 우리 남매가 갈 곳이 없어 한데를 전전할 때 거둬준 분이오. 그런 어른께 손해를 끼치는 일인데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단 말이오?”

풍원이가 몰매를 맞으면서도 항변을 했다.

“그래도 이놈이 정신을 못 차리고. 그래, 주인에게 이르겠다는 말이냐?”

“이 자리에서 날 죽인다 해도 난 참봉어른께 해가 되는 일을 눈감아줄 수는 없어요!”

몰매를 맞다 설사 죽는다하더라도 풍원이는 김 참봉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이놈아! 그래봐야 너는 머슴이고, 김 참봉은 주인이여. 주인이 머슴놈 생각할 줄 아냐? 그래도 우리 같은 머슴이 머슴 생각하지!”

상머슴 장구가 풍원이에게 뼈있는 말을 했다. 아무리 뭇매를 퍼부어도 끝내 풍원이는 끝내 굽히지 않았다. 결국은 때리다 지친 머슴들이 포기를 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하루는 김 참봉이 풍원이를 불렀다.

“풍원아, 네 꼬맹이술을 내줄까 헌다만?”

“네에! 어르신께서요?”

지금 받고 있는 은공만 해도 감지덕지한 판에 김 참봉이 자신의 꼬맹이술까지 내준다니 풍원이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농촌에서 꼬맹이술을 낸다는 것은 상투를 올리는 것과 비슷한 풍습이었다. 이제부터 어른대접을 해주는 동시에 어엿한 온 일꾼으로 품을 쳐준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아무리 신체가 튼실해도 어른들과 품앗이를 할 수 없었다. 세상일이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는 경험과 요령이 필요했다. 그것은 연륜에서 묻어나는 것이었다. 농사일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가진 것 없는 농민들에게 자식과 노동력은 곧 재산이었다. 그러니 어린 아이 때부터 집안 일손을 거들어야 했고 열대 여섯만 되면 어른들 속에서 똑같이 힘을 써야만 했다. 본래 꼬맹이술을 내는 사람은 아이의 부모들이었다. 아이의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 부모들은 마을 어른들을 집으로 불러 술과 음심을 대접함으로써 아이의 장성함을 알리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또 꼬맹이술을 내는 이면에는 아이를 온 일꾼으로 인정받아 어른 품삯을 받기 위한 속내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욕심 많은 부모들은 아직 덜 여문 아이를 내놓고 온 품삯을 고집해 이웃과 품앗이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온품을 받는 부모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었으나 조금이라도 품삯을 줄이려는 이웃 입장에서는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머슴을 부리는 주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인 입장에서는 머슴을 부리며 알아서 새경을 올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김 참봉은 자신이 부리고 있는 풍원이를 위해 온 일꾼 대접을 해주는 꼬맹이 술을 내준다는 것이었다.

“오늘 김 참봉이 풍원이 꼬맹이술을 낸댜.”

“김 참봉이?”

“그려.”

“그 비루먹은 눔이 벌써 그렇게 여물었나.”

“열서넛 됐으니 아직은 좀 그렇지만 일하는 걸 보면 여간 당차지 않더구먼.”

“맞어! 보통내기가 아니여!”

“이젠 풍원이도 온 일꾼으로 쳐주겄네?”

“그 노랭이 영감탱이가? 차라리 고목에 꽃피기를 기다리지.”

“그래도 풍원이 남매에게는 잘한다고 입소문이 났더구만.”

“그나저나 무슨 일이랴? 앉은자리 풀도 돋지 않을 김 참봉이 머슴턱을 다 내구…….”

“그러게 말여. 안하든 짓 하면 죽는다는 데, 꽃가마 타려고 그러나?”

“낸다는 데도 지랄이냐? 가마타고 시집을 가든 저승길을 가든 김 참봉 일이고, 우린 배나 채우면 되는 거여!”

“그려, 다들 먹어치우기 전에 꼬맹이 술이나 한 순배 하러 가보세.”

“그랴. 부잣집 가서 꼬맹이 턱이나 한번 걸지게 먹어보자구.”

“그 노랭이 영감이 퍽이나 걸지게 내겠다.”

“걸지든 차지든 공술이니 감지덕지하고 먹어.”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여?”

“또 지랄한다!”

“노랭이에다 꿩병아리 같이 약은 늙은이가 머슴 꼬맹이술까지 낼 때는 무슨 꿍꿍이가 단단히 있는거여. 무슨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해!”

모두들 김 참봉의 선심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김 참봉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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