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변증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헤겔이 역사를 설명하면서 서로 갈등 대립하는 두 관계는 극복이 되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각기 정, 반, 합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건과 사태에는 이와 같은 법칙이 존재한다면서 그것이 어떤 사건이 변화되어가는 원리라고 설명합니다.

헤겔의 제자 중에서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이 정반합의 원리를 역사철학이 아닌 사물의 운동 원리로 파악하고 자신의 유물철학에 대입시켰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철학에 근거해 이후 전 세계는 200년간 혁명의 회오리에 휩싸이게 됩니다.

1980년대는 혁명의 시대였습니다. 기존의 구조에 안주하는 모든 것을 갈아엎겠다는 결의가 대학생들의 가슴에 가득 찼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눈이 없어서 열망만 가득한 들뜬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이런 열정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이론이 없으면 거품처럼 꺼집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잠시 나타났던 것이 남미의 마르크시즘인 종속이론이었습니다. 대표 저서가 염홍철의 ‘제3세계와 종속이론’(한길사, 1980)입니다. 이것은 불과 2~3년만에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꺼집니다. 그리고 그 뒤를 채운 것이 마르크스 철학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1980년대의 운동권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성장하여 사회운동에 관여합니다.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여 국회의원을 배출하기도 했죠.

그런데 마르크스 철학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머리 좋은 몇 사람들 빼고는 그 전모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당시 마르크스와 레닌은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얘기해도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건 책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모든 책을 다 보게 해도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마당에 우리나라에서는 그 책을 볼 수도 구할 수도 없으니 제대로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안을 떠오른 것이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의 책을 구해다가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이론서를 번역해 책으로 내곤 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쉬운 구어체로 나와서 당시에 인기를 독차지했던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저자가 편집부로 돼있는데, 나중에 조성오라는 사람이 저자로 밝혀집니다. 그 당시 이런 책을 썼다가는 안기부에서 당장 잡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편집부나 가명으로 책을 많이 출판했습니다. 세월이 지난 뒤에 명저로 남은 책들은 저자가 밝혀져서 그 사람의 이름으로 다시 출간 되죠. 이 책이 그런 경우입니다. 우선 어려운 내용을, 주변의 예를 들어가면서 아주 쉽게 설명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입니다. 막힘없이 술술 나갑니다. 일본의 속담을 소개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 책을 쓸 때 일본 책으로 공부했다는 느낌이 납니다. 당시의 정황을 잘 보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이 제도권에 들어오는 것은 1990년대의 일입니다. 서울대학교에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김수행 교수가 임용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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