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가벼운 발걸음으로 봄바람을 따라 걷다 문득, 심연에서부터 올라온 알 수 없는 고독감에 휩싸였다.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이 맘때쯤이면 늘 보았던 풍경이었건만, 앙상한 플라타너스가 내 발길을 세웠다.

언제부터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인기를 끌었을까. 플라타너스는 1910년경 미국에서 수입된 나무라 한다. 최근에는 다른 나무에 밀린 듯하지만, 매연에 강하고 소음을 줄여주는 특성 때문에 신작로 가로수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청주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에 호감이 간다. 오래전 방영됐던 TV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최민수가 고현정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달리는 명장면 이후 가로수길이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초등학교마다 플라타너스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함께 학교를 지키고 있는 상징물이다. 나무의 크기만 봐도 학교의 역사를 알 수 있듯이 학교와 플라타너스는 동기동창이다. 가을이면 떨어지는 낙엽을 잡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기억이 난다. 교장선생님의 긴 연설이 끝나면 낙엽을 줍던 일, 방울 열매로 야구하던 일도 플라타너스와의 추억이다. 시골에는 폐교가 많다. 아이들이 떠난 교실과 운동장은 쓸쓸하고 을씨년스럽다. 그러나 플라타너스는 여전히 학교를 지키고 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플라타너스/너의 머리는 어느 덧 파아란/하늘에 젖어 있다’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다. 왜 이 시가 유명해 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의 유년에는 많이 읊조리던 시다.

4월이 오기 전 가로수 플라타너스는 전지를 당한다. 몸통에서 자란 잔가지들이 모조리 제거된다. 나무가 더 자라는 것을 막는 작업일 것이다. 대부분 건물 2~3층 높이로 자라 있다. 성장을 억제당한 나무는 몸 곳곳이 울퉁불퉁 옹이와 상처가 많다. 유년의 운동장에서 본 하늘을 향해 질주하는 매끈한 플라타너스의 모습이 아니다.

어느 봄날, 내가 앙상한 플라타너스와 마주했을 때 그는 절규하고 있었다. 전지당한 삶 앞에서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나무 인간처럼 그의 길로 가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는 왜 그에게서 고독을 느꼈을까. 어쩌면 거울을 보듯 나의 모습을 본 것일까. 다시 눈이라도 쏟아질 듯한 봄날 오후, 상처투성이 플라타너스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어느새 춘분이 지났다.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꽃다지, 산수유, 목련이 꽃망울을 맺었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도 앞다투어 꽃을 피울 것이다. 나무마다 언 땅을 뚫고 봄물 길어 올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완연한 봄이다.

머지않아 플라타너스도 역경을 이겨내고 새잎을 돋울 것이다. 아이 머리보다 큰 잎이 초록으로 물들고 나 여기 있노라 손을 흔들 것이다. 심연에서부터 시작된 고독한 봄날, 플라타너스에게 저당 잡힌 나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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