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어리 숯이나 파치 난 숯이나 화덕에 불을 피우는 데는 별 차이가 없었다. 양만 많다면 주막에서는 파치를 더 원할 것이 분명했다. 요셉이나 베드로 아저씨도 파치가 나서 팔지 못하고 버리는 것보다는 싼값으로라도 품삯 대신 주면 돈이 굳어 좋을 일이었다. 풍원이도 조금만 다리품을 팔아 파치 난 물건을 지고 고사리 주막집으로 가져가면 몇 푼 안 되는 품삯을 받는 것보다 곱절의 이문을 볼 수 있었다. 두루두루 서로에게 이득이 생기는 일이었다.

풍원이가 장사에 수완이 붙자 물목도 늘어나고, 그만큼 형편도 나아졌다. 네 식구가 알몸으로 수리골로 들어왔던 삼 년 전 겨울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꿈만 같았다. 풍원이는 아직 체구가 작았지만, 심한 고생을 겪고 난 후여서인지 열세 살 초동이 무색할 정도로 제법 의젓해보였다. 이젠 목덜미도 두둑해지고 코밑이 거뭇거뭇해진 풍원이의 외양에서는 앳된 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늑대에게 놀라고, 먹지 못해 퉁퉁 부어 사람 꼴도 못할 것 같았던 보연이도 뽀얀 살결에 이제는 제법 여자다운 몸태가 났다.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풍원이 어머니는 아버지 일로 사람들의 눈총이 두려워 궁벽한 수리골에서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생을 이 산골짜기에서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이었다. 풍원이는 그때를 대비해 고사리 부근에 초가 한 채를 장만해 두었다. 비록 세 칸의 작은 집이었지만, 지금 사는 움막에 비하면 고사리의 초가삼간은 대궐이었다. 그리고 농사지을 손바닥만한 밭뙈기도 장만해 두었다. 그러자 풍원이 어머니도 마음을 바꿔 고사리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장 떠나도 건질 것 하나 없는 움막살림이었지만, 곧바로 고사리로 내려가지 못한 것은 봄부터 여기저기 화전에 뿌려놓은 농작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가을걷이만 끝내면 세 식구는 지긋지긋했던 마골산 수리골을 떠나 고사리로 내려갈 참이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사람들은 못살겠다며 아우성을 쳐도 시절은 무심무심 흘러갔다. 여름 문턱을 넘어서며 수리골에도 제법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자 계절의 변화도 눈에 들어왔다. 마골산에도 서서히 가을이 내리고 있었다.

“보연아, 집안을 말끔하게 치워 놓거라!”

“풍원이도 집 앞 좀 깨끗하게 쓸고!”

어머니는 아침부터 들뜬 목소리로 움막 안팎을 돌아치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오시면 뭘 대접허나…….”

어머니는 종일 안절부절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머니가 저리도 허둥대는 것은 풍원이네 움막으로 제천 배론에서 전교회장이 방문을 하기 때문이었다. 전교회장인 남경만 스테파노가 수리골을 방문하는 것은 몇 가지 목적이 있었다.

순조 즉위년 이듬해인, 신유년에 있었던 모진 박해로 연풍에서도 많은 교우들이 순교를 당한 뒤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었다. 그 뒤 십 수 년이 흐르며 박해가 느슨해지자 다시 교우들이 늘어나며 새재 곳곳에서 촌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전교회장의 이번 방문은 새재 주변에 흩어져있는 교우들을 한데 모으고, 성사를 받지 못한 교우들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와 보연이도 다른 교우들과 함께 이번에 성사를 받게 되어 있었다. 어머니와 보연이는 성사를 받기 위해 벌써 서너 달 전부터 열심히 교리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교리를 공부해도 어머니는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오직 예수, 마리아 두 마디와 그저 머리를 조아리며 줄창 기도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풍원이에게는 천주학 믿는 것을 금했다. 가문을 이어야 할 유일한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학을 믿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다.

“너는 야수교 근처에는 얼씬도 말그라!”

“어머니와 보연이도 믿잖아요.”

“우린 아녀자지만, 너는 대를 이어야 할 우리 집 대들보다. 대들보가 무너지면 그 집안은 망하는 거다. 너는 반드시 대를 잇고 쓰러진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어머니는 천주님보다도 자식이 우선이었다. 어머니에게는 믿음보다 풍원이가 가문을 일으키고, 대를 잇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요셉 아저씨나 베드로 아저씨 보기 미안하잖아요? 매일 눈뜨면 얼굴 마주하며 사는 데…….”

어린 나이였지만, 풍원이는 옹기장이 요셉과 숯쟁이 베드로 아저씨에게 미안했다.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믿고 있는 천주학을 함께하지 않는 것이 마치 그들을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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