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한산면 소재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마을을 건너 멀리 너른 들판이 다 보였다. 이렇게 전망이 좋으니 이곳이 주변을 조망하는 보루이고 요새가 되었을 것이다. 반대쪽 봉우리 성의 윤곽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뚜렷하게 보였다.

정자에서 한산면 소재지 마을로 내려가는 등산로도 있었다. 반대쪽 산봉우리를 올라가야겠기에 올라 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기로 했다. 정상에서 동문지 쪽으로 내려와 성을 한 바퀴 돌 수도 있었으나 너무 가파르고 험해서 안전한 쪽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 건지산정의 건립에 대한 송덕비가 여럿 있었다. 건지산성 정상에 이렇게 고증도 없이 시멘트 건물을 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곳에 어떤 모습의 건물이 있었을지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역사유적지에는 건물은 복원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성의 문화재적 가치보다 등산로로서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등산로 안내는 있어도 성의 개념도는 없었다.

다시 서문지로 내려와서 이곳저곳 살펴보고 건너편 산봉우리로 향한다. 능선은 남쪽보다 훨씬 완만하고 성벽도 높지 않았다. 정상부에서 일부 돌로 기초를 한 위에 흙으로 쌓은 부분을 발견했다. 북쪽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돌아가는 곳에 건물지로 보이는 평평한 곳이 보였다. 두 봉우리에 각각 비슷한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 성가퀴 길도 없는 곳을 헤치며 내려왔다. 가파르고 험해 몇 번 미끄러졌다. 작은 나무들을 낫으로 제거한 뾰족한 그루터기가 남아있어 위험했다. 가파른 성을 내려와 작은 도랑을 건너고 도로를 지나 봉서사로 향했다.

건지산성은 남북 두 개의 정상부에 있는 작은 테메식 내성을 헤드폰처럼 이어 포곡식으로 축성된 특이한 형태의 산성이다. 이 성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낮은 봉우리에 작은 타원형 테메식 산성 두 곳이 더 있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 두 군데를 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공산성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척후 역할을 맡은 보조성이거나 보루일 것이다. 건지산성이라는 큰 산성이 본부가 되고 보조성이나 작은 보루들은 주변을 관찰하는 망대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답사한 백제의 산성들이 대개 이런 형식을 띠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성과 금이성의 중간에 작성이 있고 금이성과 비암사 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비암산 보루(내가 붙인 이름)가 있다. 이것을 모자축성법이라 하는데 모성과 자성의 연결고리라 할 수 있다. 건지산성도 모자축성법에 의한 산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건지산성은 백제 수도로부터 서쪽 바다와 금강의 어귀를 지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백제가 당과 교역과 쟁패의 현장인 기벌포와 연계되는 백제 수호의 요지였을 것이다. 일본 서기에 의하면 백제 최후 순간에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러 왔던 군사들이 기벌포에서 당군에게 전멸했다고 하니 슬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건지산성이 백제 최후의 격전지라고는 하나 부흥군 3천 군사가 최후를 맞아 몰살당한 현장은 아무래도 아닌 듯하다. 성의 모습이 그렇게 보이지 않고 굴이 있을 법한 곳도 없다. 주류성은 험준한 산악지대라고 하는데 이곳은 평야지대이다. 또한 봉서사는 후에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절이라 하니 그들의 명복을 비는 사찰도 없다. 백제의 변방을 지키는 중요한 성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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