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1100년 송(宋)나라 무렵에는 신분제도가 사뭇 철저했다. 하지만 누구나 재주만 있으면 신분 상승이 가능한 개방형 군주제였다. 그런 까닭에 벼슬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학문이 먼저였지만, 벼슬자리는 꼭 학문을 배워야만 얻는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재주만 있으면 누구나 관운을 가질 수 있었다.

송나라 철종 무렵 개봉부에 고구(高毬)라는 자가 살았다. 예의범절도 모르는 무식한 망나니였다. 하지만 공차는 실력만은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젊은 시절에는 절도죄를 지어 곤장 20대를 맞고 성 밖으로 쫓겨난 적도 있었다. 얼마 후 사면을 받아 개봉부에 돌아왔는데, 먹고 살기 위해 취업을 하다 보니 운이 좋게도 철종의 매부인 왕진경의 말단 심부름꾼 역할이었다.

하루는 왕진경이 고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귀한 옥그릇을 철종의 아우인 단왕에게 갖다 주라는 것이었다. 단왕은 평소 그림과 음악을 즐겨했고, 또 운동을 좋아했는데 그중 축구를 무엇보다 즐겨했다. 고구가 궁중에 들어갔을 때, 마침 단왕은 내관들과 어울려 공을 차고 있었다. 이에 고구는 그 광경을 쳐다보며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갑자기 고구에게 공이 날아왔다. 단왕이 오른발로 세게 찬 공이 빗나가 바로 고구 얼굴을 향해 날아온 것이었다. 순간 고구가 가슴으로 가볍게 공을 받아 멋진 슛으로 단왕에게 차 보냈다. 그 모습을 본 단왕은 한편으로 놀랍고, 한편으로 기뻐 다가가 말했다.

“네놈은 대체 누구이냐?”

고구가 공손히 무릎을 꿇고 분부에 따라 옥기를 헌상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단왕이 다시 물었다. “축구에 아주 능하던데, 네 이름이 무어냐?”

“고구라 합니다.”

“좋다, 함께 공을 차자!”

고구가 몇 번 사양했으나 단왕은 기어이 그를 끌어들여 함께 공을 찼다. 고구는 자유자재로 공을 다루며 멋진 장기를 한껏 과시했다. 높게 차고, 낮게 차고, 멀리 차고, 가깝게 차고, 마치 공과 고구가 하나가 된 듯한 대단한 묘기들이었다. 단왕과 일행들은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단왕은 고구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날 이후 곁에 머물게 했다. 그 후로 고구는 단왕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단왕의 비위를 맞추는데 전념하며 지냈다.

얼마 후 철종이 승하하고 단왕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바로 휘종(徽宗)이다. 휘종은 고구를 총애한 나머지 일 년 만에 태위로 승진시켰다. 한 시절 망나니였던 고구는 이후 파격적인 승진을 계속했다. 공 차는 실력 하나로 나중에는 황제 친위부대인 금군 총사령관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는 ‘송사(宋史)’에 있는 이야기이다.

유어출청(遊魚出聽)이란 거문고 소리가 하도 신기하여 물고기마저 떠올라와 듣는다는 뜻이다. 재주가 뛰어난 것을 칭찬하는 말이다. 세상에 어떤 분야이든 성공을 꿈꾼다면 우선 탁월한 한 가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시기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성공을 못한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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