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맡은 소임만 했을 뿐입니다요.”
“아전이라는 자의 소임이 백성들을 탐학하는 일이더냐?”
“백성들을 탐학한 일은 없고, 관아에서 시키는 일만 했을 뿐입니다요.”
“그런데 어찌 너로 인한 고변이 산을 이루는가?”
“그 연유야 지가 어찌 알겠습니까요?”
“네놈이 저질러 놓고 모른다고 하면 죄가 없어질 것으로 생각하느냐? 네놈은 아전을 빌미로 고을민들에게 갖은 포악을 떨지 않았느냐?”
“관아에서 매기는 세금을 받아들이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사옵니다.”
“네놈이 자꾸 관아 핑계만 대는 데, 그렇다면 네놈 땅을 부치며 도조를 내는 소작인들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 것은 무슨 연유더냐?”
“그거야…….”
최선복이 목사의 물음에 답변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네놈이 고리의 도조를 받고 소작인들을 탐학해도 그들이 반발하지 못한 것은 네가 아전임을 내세워 고을민들에게 위세를 부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이번 관아 괘서는 임금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너의 탐학을 견디지 못한 고을민들이 너를 고변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
최선복은 어이가 없었다.
아전을 하며 자신의 잇속을 차린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을 괘서 사건과 관련지어 역모로 몰아가는 목사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역모는 곧 죽음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자신을 통해 다른 아전들에게 경계심을 주기 위해 그러는 것일 뿐 설마 역모까지 몰아가겠는가 싶었다. 더구나 옆에는 괘서를 쓴 장본인이 잡혀와 있었다.
“다음, 죄인 정덕헌은 듣거라!”
충주목사가 최선복 옆에 결박되어 있는 정덕헌에게 호령했다.
“너는 임금의 삼대 추증을 받은 사대부 집안 자손으로서 배은망덕하게도 임금을 능멸하고, 게다가 양반이라면 고을의 미풍양속을 진작시켜야 할 소임이 있음에도 어찌하여 그들을 모아놓고 선동을 했는고?”
“선동한 것이 아니라 교화를 하려 한 것이오!”
“교화라, 그래 뭘 교화하려 했는고?”
“백성이 못 사는 것은 그들 잘못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치고자 했을 뿐이오.”
“그럼 그게 누구의 잘못이란 말이더냐?”
“목사는 진정 그것을 몰라 내게 묻는 것이오?”
“그래, 그 연유 한번 들어보자.”
“임금과 조정이 무능하고, 탐학하는 관리들이 처처에 깔렸기 때문이 아니겠소?”
“네놈이 지금 하는 말이 역모가 된다는 것을 모르더냐?”
“역모가 아니라, 선비의 당연한 도리요!”
“선비의 도리가 역모란 말이더냐?”
“도리에 어긋나면, 비록 임금이라도 질책하여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선비의 길이오! 백성들은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는데, 이런 백성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면 임금 또한 도리를 못하는 것이고, 글을 읽고 조정에 나가 관리된 자가 벼슬자리 떨어질까 두려워 직언을 멈춘다면 그것 또한 신하된 도리가 아니오. 손끝 까딱 않고 백성들 피땀 흘린 덕으로 먹고사는 관리들이 오히려 백성들을 수탈한다면 목사 영감 또한 그게 도리라 하지는 못할 것이오. 임금과 조정이, 관리와 선비 된 자가 도리를 지키는 길은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바른 뜻을 펴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그런데 이런 자들이 일신상의 안일을 위해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만든다면 그건 금수와 다를 것이 뭐가 있겠소이까? 아니, 짐승만도 못한 삶이오!”
“네놈이 아무리 궤변을 늘어놓아도 임금을 능멸했으니 역모다.”
“난, 임금을 능멸한 적이 없소이다!”
“임금 도리를 못한다고 지껄인 것이 그게 아니고 무엇이더란 말이냐?”
“나라의 천천세를 위해 외척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 것이 어찌 역모란 말이오?”
“그게 곧 역모란 말이다. 춘추 어리신 임금을 보필하여 정사를 돌보는 외척을 불충으로 몰다니 그러고도 네놈이 목숨을 부지할 줄 알았더냐?” 
“자신들의 가문만 위한 것이 임금을 보필하고 백성을 위한 정사란 말이오!”
“아니 저런 발칙한 놈을 봤나! 네놈이 지금 하는 말이 임금을 능멸하는 대역 죄인임을 모르느냐?”
“임금의 눈을 가리고 있는 외척을 죄주라는데 그것이 대역죄라면 목사 또한 외척을 임금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나 뭐가 다르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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