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루에다 누가 괘서를 붙였다는구먼.”

“뭔 얘기래?”

“나랏님이 선정을 베풀 것과 탐관오리들을 질타하는 격문이랴.”

“누군진 몰라도 옳은 얘기를 했구먼.”

“아니 이 사람이 모가지가 너덧 개라도 되는감? 어느 귀신한테 채여 갈라고 그런 소리를 아무 데서나 하는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여.”

“그래도 개죽음은 당하지 말아야지.”

“어쨌거나 아까운 목숨 여럿 달아나게 생겼어.”

청풍관아 정문인 금남루에 누군가 붙인 괘서 사건으로 청풍관아가 발칵 뒤집혔다. 괘서의 내용은 외척의 전횡을 질타하고 왕권을 되살려야 한다는 취지였다. 열한 살 어린 왕 순조의 즉위로 시작된 대왕대비의 친정이 끝나자, 이번에는 정조의 유탁을 받은 임금의 장인인 김조순에 의해 안동 김 씨 일문의 세도정권이 들어섰다. 외척의 발호로 왕권은 미약해지고 나라의 통치 질서가 문란해졌다. 그들은 왕의 외척임을 앞세워 조정의 모든 요직을 차지하고 마음대로 나랏일을 좌지우지했다. 그들의 무소불위한 권력은 임금도 어쩔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임금도 갈아치울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들이 김 씨 일파의 외척들이었다. 그들은 하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이런 외척을 질타하는 괘서가 붙었으니, 이는 역모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사건이 워낙 중차대한지라 충주에서 목사가 교졸들을 직접 대동하고 사건의 진의를 밝히기 위해 청풍 관내를 이 잡듯 들쑤시고 다녔다. 조정에서는 화급하게 안핵사를 파송했다.

조정에서는 지난해 평안도에서 일어났던 홍경래 난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난 후 아직도 민심의 동태를 살피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더구나 난이 끝난 지 일 년이 넘었음에도 홍경래가 살아있다는 괴이한 소문들이 사방을 떠돌아다녔다. 조정에서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서북인 차별에 불만을 품은 홍경래가 양순한 백성들을 선동하여 난을 일으켰다고 오도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땅 파는 일밖에 모르는 백성들이 땅을 팽개치고 낫과 곡괭이를 잡았을 때는 단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그것은 호구지책이 막막할 때였다. 백성들은 입안에 곡기만 들어가도 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정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미봉책으로만 일관했다.

시절은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그런데다 하늘조차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벌써 내리 삼 년을 남한강 유역에는 물난리가 해마다 찾아왔다. ‘불난리에는 건질 것이 있어도 물난리에는 건질 게 없다’더니 내리 삼 년을 큰 비가 휩쓸고 지나간 남한강 유역에는 마을마다 민심의 흉흉함이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지난해에도 이 지역에는 큰비가 내려 일수백 호가 흔적도 없이 떠내려갔고, 강가에 살던 고을민이 일백 이십여 명이나 물에 휩쓸려가 죽음을 당했다. 한 해만 흉년을 만나도 없는 백성들은 배를 주릴 판인데 삼 년을 내리 홍수와 흉년이 겹쳤으니 처처에 기근이 심각한 지경이었다.

조정에서는 굶주린 백성들을 구난하기 위해 구휼미를 내려 보냈다는 소문만 들릴 뿐 중간에 어떤 인쥐들이 다 파먹었는지 백성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낱알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관아와 부잣집 창고에서는 호랑이 아가리보다도 무섭다는 장리쌀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장리쌀도 아무에게나 꿔주는 것이 아니었다. 비싼 길미를 치르고도 관아 아전이나 부자에게 잘 보여야만 얻을 수가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정에서는 백성들 사정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흘에 한 끼도 제대로 먹기도 힘든 백성들에게 온갖 명목을 붙인 세금과 부역이 부과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백성들 원성은 높아만 갔다.

“세곡을 엽전으로 내라고 하면 얽은 놈이 곰보고, 째보가 언청이지 뭐가 다르디야? 나랏님들 하시는 일을 도통 알 수가 없구먼.”

“그러게 말여. 둘러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지. 그런 법을 맹그는 나랏님들 대가리 속엔 뭐가 들었을꼬?”

“쥐 죽은 날 괭이 눈물이여! 백성들 생각은 무신 백성들 생각이여, 다 개살구여!”

“눈 가리고 아옹이지, 그게 무신 백성을 위해 맹근 법이랴. 땟거리도 없는 놈한테 양식 팔아 돈으로 세금을 내라니 콧구멍이 두 개라 할 수 없이 숨을 쉰다.”

“곡물은 부피가 크니, 양반놈들 쌓아놓기 편하려고 그러는 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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