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만중이 쌈지에서 남초를 꺼내 곰방대에 다져 넣으며 재차 물었다. 그래도 봉화수는 여전히 송만중을 노려보기만 했다.

송만중이 쌈지에서 남초를 한 줌 꺼내 곰방대에 재웠다. 그리고는 불을 붙이려고 빨뿌리를 ‘뻑뻑’ 빨아대며 화로 속으로 얼굴을 숙였다. 화로에는 저녁 군불을 때고 담아온 숯불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송만중이 빨쭈리를 빨며 두어 모금 연기를 뱉어냈다. 그 순간이었다. 벌떡 일어선 봉화수가 도끼로 나무를 찍듯 송만중의 뒤통수를 찍어 차며 밟아버렸다. 숯불이 시뻘겋게 타오르는 화로 속에 얼굴이 파묻힌 송만중은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머리를 빼려고 용을 썼지만 봉화수가 찍어 누르고 있어 소용이 없었다. 송만중의 사지가 불에 던져진 개구리 다리처럼 뒤틀렸다. 봉화수가 머리를 누르고 있던 발을 떼자 송만중이 화로에서 얼굴을 빼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송만중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미친 듯 방바닥을 뒹굴었다. 봉화수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약 먹은 개처럼 방바닥을 돌아치는 송만중의 턱을 오지게 걷어찼다. 송만중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다시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봉화수가 한쪽 발로 송만중의 목을 지려 밟고 품에서 날카로운 쇠를 꺼냈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송만중의 허벅지를 쑤셨다. 시퍼렇게 끝이 선 쇠가 살을 뚫고 뼈에 박히는 듯 둔탁한 느낌이 봉화수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송만중의 입에서 묵직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놈 못돼먹은 심보를 생각하면 당장 숨통을 끊어버리거나, 앉은뱅이로 만들어 평생을 쪼그려 살게 해주고 싶다만, 평생 길바닥에서 괄시받으며 살아온 장돌뱅이 신세가 가련해 이 정도로 끝내니 모든 게 조상님 솔밭에 든 줄 알거라!”

봉화수가 송만중에게 엄포를 놓으며 허벅지 깊숙하게 박혀있던 쇠를 뽑았다. 다시 한 번 고통에 겨운 비명 소리가 송만중 입에서 튀어나왔다. 봉화수가 방문을 걷어찼다. 그 바람에 문짝이 허깨비처럼 주막집 마당으로 날아가며 박살이 났다. 봉화수가 송만중의 뒷덜미를 단단하게 움켜쥔 채 툇마루 난간에 섰다. 송만중의 수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때 방문 앞 봉당에서 동태를 살피던 대방 강수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품에서 창칼을 꺼내들고 소리쳤다.

“어떤 놈이든 한 발짝이라도 나서는 놈이 있으면 그놈부터 단칼에 목줄을 끊어 줄 테다!”

대방 강수가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좌우로 날렵하게 휘두르며 목 자르는 시늉을 했다. 강수의 살벌한 칼놀림에 누구 한 사람 선뜻 앞으로 나서는 송만중의 수하는 없었다. 봉화수는 검둥개 꼴이 된 송만중의 뒷덜미를 거머쥔 채 패거리들에게 소리쳤다.

“아무리 천한 장사라도 도는 있는 법이다. 여기 황강객주 송만중이는 북진도중의 규약을 무시하고, 도원 간 신의를 배반한 벌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부터 황강객주의 모든 권리는 북진여각에서 몰수한다. 송만중과 그 수하들은 지금 당장 청풍 땅을 떠나 밤을 다퉈 이 구역을 떠나라! 만약 내일 아침까지 이곳에서 얼쩡거리다 걸리면 누구든 이 꼴로 만들어줄 테다!”

봉화수가 둘러서 있던 송만중 패거리들에게 고함을 치며 ‘추-욱’ 늘어진 송만중을 사정없이 봉당 아래 마당으로 내동댕이쳤다. 송만중이가 허깨비처럼 철퍼덕 쓰러졌다. 자신들이 모시던 주인이 초죽음을 당해 주막집 마당에 개껍데기처럼 나뒹굴자 송만중의 수하들은 대거리는커녕 쩔쩔매며 직수굿했다.

“목전 이득에만 눈이 멀어 도원 간 결속을 깬 배신자는 이제 더 이상 동료가 될 수 없다. 오늘 이후 송만중과 너희들은 평생 북진도중 관할 내는 낯짝도 비추지 마라! 만약 내 말을 가볍게 여겨 따르지 않으면 그땐 정말 숨통을 끊어 줄 테니 그리 알거라!”

땅바닥에 널브러진 황강객주 송만중과 그 수하들을 향해 봉화수가 호령했다. 봉화수가 대방 강수와 함께 강을 건너 북진여각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이미 밤은 이슥해져 있었다.

“수고들 했네.”

그때까지 잠들지 못하고 있던 최풍원이 별당채 일각문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반기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최풍원은 왠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별당을 나와 사랑채 안마당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객사가 있는 행랑 마당으로 나갔다. 그 뒤를 봉화수가 뒤따랐다. 마당 한 쪽에 타오르던 화톳불도 사그라져 잔불만 재티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떠들썩하던 객사는 달빛 속에 묻혀 조용하기만 했다. 보부상들과 장돌림들은 하루의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지만, 마구간마다 가득하게 차있는 짐소와 나귀들이 인기척에 놀라 허연 김을 내뿜으며 킁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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