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송만중이 충주나 목계객주들과 결탁해 물산들을 큰 물길이 지나는 꽃바위나루까지만 등짐으로 져나르면 거래가 이루어지는 데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황강나루와 꽃바위나루 사이에 험한 할딱재가 있긴 했지만, 불과 시오리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다.

문제는 탈퇴한 송만중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혹여 그 여파가 다른 객주들에게까지 파급된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였다. 최풍원으로서는 서둘러 도중회의 객주들을 안심시키고 난장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여러 객주들께선 염려할 것 없소이다. 이보다두 더 힘들었던 고비를 수없이 넘어온 우리요. 이 최풍원이를 믿고 우리 객주님들께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문제없소!”

최풍원이 객주들을 둘러보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여부가 있겄습니까요? 지들은 대행수님만 믿습니다요!”

황칠규였다. 그는 평소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할 줄도 모르고 비위만 맞춰 아부장이로 낙인이 찍히기는 했지만, 객주들 사이에서 밉상을 받지는 않았다. 황 객주의 아부가 오히려 굳어져있던 도중회 분위기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절대로 객주들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을 거외다. 그러니 날 믿고 따라주시오!”

최풍원이 객주들을 안심시켰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여적지 지들이 대행수 어르신 그늘에서 잘 먹고 살아왔는 데 당연지사한 일입지요.”

양평나루 금만춘 객주도 최풍원의 기분을 살피며 아부를 했다.

“고맙네.”

“지들에게 고맙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 하시지도 마시유.”

황칠규는 한술 더 떠 머리까지 조아리며 아첨을 했다.

“고마우이, 허허헛! 오늘 밤은 내가 거하게 한 잔 내리다, 그러니 객주님들과 객사 장꾼들까지 모두 맘껏 들구려. 그리고 오늘 상론하지 못한 일들은 내일 도중회에서 합시다!”

태연한 척 겉으로는 애써 웃고 있었지만, 황강객주 송만중의 일로 최풍원의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무쇠 솥 끓듯 했다. 최풍원이 자리를 털며 일어서자, 모두들 일어서며 읍을 올렸다. 그리고 모든 객주들이 따라 나와 최풍원이 마당을 가로질러 별당 채 일각문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예를 갖추며 서 있었다. 사랑채 마당에는 아직도 화톳불이 기세 좋게 타오르고 있었다.

“송 객주, 내 이 놈을 당장!”

별당채로 돌아온 최풍원은 노여움을 삭히지 못하고 있었다.

“행수 어르신, 황강놈들 이번에 된통 일침을 놓을까요?”

봉화수가 최풍원의 심중을 읽고는 선수를 쳤다.

청풍 인근에서 북진여각의 최풍원에게 감히 맞설 객주는 없었다. 중요한 사안들은 도중회에서 객주들과 상의해서 추진하기는 했지만, 북진여각 최풍원의 비호 없이 장사를 한다는 것은 지팡이 없는 소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북진도중에서는 최풍원 대행수의 말은 곧 법이었다.

최풍원은 이런 힘을 바탕으로 객주들의 목줄을 잡고 이제껏 청풍 인근 상권을 틀어쥐어 왔다. 무소불위하던 최풍원도 황강객주 송만중의 대거리가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더구나 여러 객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송만중이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맞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대거리를 한다는 것은 이젠 최풍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송만중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만큼 자신이 생겼다는 것이고, 그 자신감과 힘은 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되려 그놈에게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동몽회 애들을 넉넉하게 데리고 가게!”

“아닙니다. 강수만 데리고 단둘이 가겠습니다. 난장을 앞두고 시끄러우면 다른 객주들한테도 좋지 않을 듯싶습니다. 조용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둘이 괜찮겠는가?”

“오히려 단촐한 것이 더 좋습니다!”

봉화수가 자신 있게 말했다.

“송만중이 헛된 생각을 못하도록 동곳을 빼버리게!”

비단 오늘뿐이 아니었다. 송만중은 도중회에서 정한 규약을 지키지 않고 상도덕을 어기기 일쑤였다. 제 물건을 팔기 위해 값을 흐려 도원들의 물건을 창고에서 썩게 만드는 것은 다반사였고, 이득이 생기는 일이라면 온갖 야비한 술수를 다 쓰고 있었다. 진작부터 최풍원은 송만중의 행태에 심히 불쾌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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