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외지에서 온 위탁자들에게 싼값으로 숙박을 제공하거나, 무상으로 물건을 보관해주는 일도 곁들이고 있었다. 이들은 생산자와 보부상, 보부상과 보부상, 보부상과 시전상인들 사이에서 서로를 연결해주는 중개상이었다. 또 이들 밑에는 적게는 십여 명에서 많게는 수십여 명이 넘는 보부상들이 있었다. 이런 물상객주들의 우두머리요, 도중회의 수장이 북진여각 최풍원 대행수였다.

북진여각 최풍원 대행수는 막대한 자금과 조직을 가진 거상이었다. 이런 풍부한 자금력을 이용하여 영세한 물상객주들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먼 지역까지 넘나들며 물산들을 매매했다. 또 관아에서 객주들에게 요구하는 온갖 세금들을 한꺼번에 모아 부담하는 대신 권세가들과 결탁하여 이권을 따내고 다른 지역에서 오는 상인이나 강을 오르내리는 선주들의 배를 대상으로 규정된 수수료를 징수하기도 했다.

사랑채에 모여 있는 각 지역의 객주들은 최풍원 대행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너스레를 늘어놓고 있었다.

“이봐, 임 객주! 큰 칼이나 하나 꼬나들고 도둑굴 앞에 서 있으면 영락 없는 산적 모양일세 그려.”

나이도 비슷한 연배고 장사를 하는 곳도 지척인지라 평소 서로간에 교류가 잦은 하진객주 우홍만이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우거져 텁수룩한 장회객주 임구학을 놀려먹고 있었다.

“자네, 언제 우리 동네 도둑바위 앞으로 지나가기만 해보게. 필경 날 거기서 만날테니. 그땐 아마 손바닥이 개발바닥이 되도록 빌어야 목숨을 건질 걸. 핫-핫-핫-!”

우홍만이 던지는 농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임구학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소두방만한 얼굴이 온통 털치레로 변했다. 장회객주 임구학은 육척이 훨씬 넘는 장신에 이백 근이 넘는 거구였다.

북진에서 단양 쪽으로 물길 따라 이십 리를 올라가면 구담봉 아래 장회라는 작은 강마을이 있다. 장회는 그리 크지 않은 강마을이지만, 이곳으로 나있는 소로를 통해 남동쪽 지역은 어디로도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런 지리적 이점을 안고, 임구학은 덕산의 문수봉과 월악산 인근 지역은 물론 수산과 단양 일대의 약초와 산짐승 가죽을 모두 전매하다시피 했다. 곡물처럼 부피가 크거나 물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임 객주는 온갖 귀한 물건을 취급하는 까닭에 알부자로 소문이 나 있었다. 우람한 덩치에 걸맞게 마음 씀씀이도 푸근하여 물산 값을 후하게 쳐준 까닭에 심마니들이나 사냥꾼들이 가까운 저자를 두고도 장회나루에 있는 그의 객주집까지 먼 길을 마다 않고 일부러 찾아올 정도였다. 하지만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던 장사도 이젠 다 그른 듯했다.

석삼년이 넘도록 발품을 팔아 닦아놓은 장사 수완 덕에 사람들이 찾아들게 되고, 이젠 앉은자리에서 편하게 장사 좀 해보겠거니 했는 데 그게 아니었다. 이삼년 사이에 부쩍 늘어난 보부상들이 산골 구석구석까지 이 잡듯 들쑤시고 다니자 물산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객주집 곳간은 비어만 갔다. 사방에서 찾아들어 사람들 발길이 이어지던 객주집은 옛 얘기로 허울만 객주집일 뿐이었다. 그러자 임구학은 하는 수없이 발품을 파는 보상객주로 다시 나서 장마당과 객지를 떠도는 고달픈 신세가 되었다.

“자네, 집 떠난 지 얼마나 됐남?”

“달포쯤 됐을 걸.”

“한창 물오른 마누라 맘 고생 몸 고생 시키지 말고, 가까운 도둑바위에 자리를 잡으라니까. 그럼 부평초처럼 떠돌며 고린내 나는 사내놈들 틈에서 객주잠 안 자도 되고 보들보들한 지수씨 끼고 매일 밤 얼마나 깨가 쏟아지겄냐?”

“개 응댕이같은 소리! 산적질하다 관가에 잡혀가 모가지 날아가면 니눔이 도로 붙여놓을거며, 마누라 끼고 밤만 잘 보내면 거기서 밥이 나온다냐, 돈이 나온다냐?”

“까짓 것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그냥저냥 살면 되지, 시퍼런 청춘에 내나 너나 아둥바둥 뭔 지랄인지 모르겄다.”

우홍만이 불끈 쥔 주먹으로 피로가 뭉친 양 종아리를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그런 배락 맞을 소리 하지도 말그라!”

영춘 용진나루에서 목상을 하는 심봉수가 우홍만의 배부른 소리에 뿔따구를 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따! 성님은? 그깐 소리에 벼락 맞으면 조선 천지 살아남을 놈 하나도 없겄네.”

“이눔아! 네 눔 다리품에 가솔들 목숨줄이 달렸어. 처처에 굶는 인총이 줄줄한데 네눔이 배지가 불러 포스런 아가리질이지.”

하기야 깊은 산중에 파묻혀 변변한 밭뙤기 하나 없는 남한강 최상류에 살며 눈만 뜨면  이웃들 궁핍함을 수도 없이 보아온 심봉수로서는 우홍만의 말이 개 풀 뜯어먹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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