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목계 숨통이 어디지?”

“경상과 영남 아니겠습니까?”

“허-엄!”

최풍원은 수족처럼 움직여주는 봉화수가 든든했다. 이젠 장사 돌아가는 일머리는 물론 자신의 수까지 읽어내며 입속 혀처럼 움직여주는 화수가 최풍원은 내심 흡족했다.

“그럼, 경상들은 어떻허지?”

“목계에 머물고 있는 경상들을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계서도 재미를 보는 데, 자네 같으면 험한 물길을 뚫고 예까지 올라오겠는가?”

“그러니 발림을 해야지요.”

“발림이라, 어떻게?”

“일단 목계보다 싼 값으로 우리 물건을 내놓아야지요. 그리고 목계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을 많이 잡도리해 놓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겠는지요?”

“싼값으로 발림을 한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목계에 없는 물건은 어떻게 마련허지?”

“강 하류에서 올라오는 경상들 물산이야 여기서 어쩔 수 없겠지만, 목계로 가는 영남객주들 발걸음부터 북진으로 돌려야겠습니다.”

“영남객주와 목계는 무슨 상관인가?”

“영남과 북진은 지척에 있어 나는 산물이 비슷합니다. 목계는 지금 우리한테 구해가던 물산을 영남객주들을 통해 수급 받고 있으니 그걸 끊어버려야지요. 영남에서 넘어오는 물산들이 목계장으로 빠져나가는 걸 막으면 목계는 특산품이 줄어 물목이 빈약해지겠지요.”

“그렇구먼. 그런데 어떻게 막지?”

“죽령을 넘는 물산들은 곳곳에 우리 객주들이 목을 차지하고 있어 어차피 이곳을 거치지 않고는 목계로 새어나갈 수 없으니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새재나 하늘재를 넘어 안보를 거쳐 살미로 빠지는 영남객주들이 문젭니다. 그들을 단단히 잡도리해야 할 텐데 그게 걱정입니다.”

그랬다. 지리적으로 북진은 경상도와 한양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한양에서 경상도로 내려가거나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물길이나 육로의 목을 차지하고 있었다. 죽령을 넘어오는 영남객주나 보부상들이 단양의 하진나루에서 물길을 이용한다면 청풍의 북진나루를 거치지 않고는 목계로든 한양으로든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강원도 정선이나 평창 그리고 영월에서 내려오는 보부상들의 물건 또한 영춘?단양을 거쳐 청풍의 북진나루를 통해야만 한양으로 갈 수 있었다. 설사 역로를 이용해 육로로 봉화재를 넘는다 해도 북진나루에서 삼십 리 쯤 떨어진 수산 갈림길에서 재를 넘기 전에 그들의 발목을 잡으면 될 일이었다. 혹여 봉화재를 넘었다고 해도 염려할 것은 아니었다. 봉화재 바로 밑은 서창이었고, 그곳은 북진의 상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살미였다. 새재와 하늘재에서 가까운 살미는 북진과 목계의 배꼽 같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필요에 따라 객주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살미와 인접하여 가까운 곳에 북진여각의 상권인 황강이 있었다. 더구나 황강은 영남대로가 통하는 살미의 바로 위를 차지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 필요하면 언제든 목줄을 죌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그러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새재와 하늘재라. 거기는 송 객주 관할이 아닌가?”

“그런데 행수어르신, 저어…….”

봉화수가 최풍원의 낯빛을 살피며 말꼬리를 흐렸다.

“뭔가?”

“동몽회 애들 말로는 황강객주 송만중이가 벌써부터 목계객주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약삭빠른 놈! 올챙이적 생각 못허고…….”

최풍원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황강은 새재와 하늘재를 넘어 송계로 빠지거나 지릅재를 넘으면 곧바로 연결되는 강마을로 북진과 목계의 중간쯤에 있었다. 타고난 성격조차 약삭빠른 송만중은 이런 지리적 이점을 안고 북진과 목계장 사이를 오가며 슬쩍슬쩍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더구나 올해는 북진나루가 오랫동안 얼음에 갇혀있자 송만중은 새재와 하늘재를 넘어오는 영남객주들의 물산들을 벌써부터 목계로 빼돌리고 있었다. 그것이 동몽회원들의 눈에 걸린 모양이었다.

문제는 송만중이었다. 난장을 틀기 위해서는 송만중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왜냐하면 목계의 숨통을 끊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진 또한 강원도나 죽령을 넘어오는 물량만으로는 난장을 틀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북진난장의 다양한 물산 수급을 위해서 송만중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북진도 새재나 하늘재를 넘어오는 다양하고 풍부한 영남 남쪽의 곡창지대 물산들을 받아야만 난장을 틀만한 물량이 되기 때문이었다. 난장이 활기차려면 각지에서 모여든 갖가지 물산들이 철철 넘쳐흘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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