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중국 현대사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만리장정입니다. 1934년 국민당 군대의 공격을 견디지 못한 모택동이 강서성의 정강산을 떠나 중국 전역을 떠돌다가 섬서성 연안 북쪽에 이르게 된 사건을 말합니다. 이 대장정에서 살아남으로써 중국 공산당은, 대 일본 전쟁에서 국민들의 불신으로 뿌리를 잃은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 대륙의 주인이 됩니다.

그런데 이때 이들을 동행하며 취재한 미국인 기자가 있습니다. 에드가 스노우. 당시 서양에서는 중국 공산당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당의 견해에 따라 공산 비적 정도로 생각했죠. 그런데 이런 서구의 인식을 한 순간에 바꿔놓은 사람이 바로 에드가 스노우입니다. 국민당에 쫓기는 공산당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서구에 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보고 느낀 중국 공산당의 모습을 책으로 써냅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중국의 붉은 별’입니다.

요즘 글의 갈래로 치면 르포나 다큐멘터리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중국공산당에 대한 유럽의 인식이 바뀝니다. 그리고 모택동은 나중에 에드가 스노우를 중국으로 초청하여 훈장을 수여합니다. 에드가 스노우는 그후에도 중국에 오래 살면서 강의도 하고 지냈습니다. 중국인보다 더 중국인 같았던 인물이죠.

그런데 그의 옆에는 이제 중국이 아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에드가 스노우의 아내인 님 웨일즈입니다. 남편을 따라서 중국에 온 님 웰일즈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김산이라는 한 조선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에게 호기심이 생겨서 그의 행적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이 책 ‘아리랑’입니다.

김산은 광동 코뮌에 참가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중국에는 각종 공산주의 조직이 전국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납니다. 모택동의 공산당도 그렇게 생겨난 한 조직입니다. 다른 조직이 모두 중국군의 공격을 받아서 와해됐지만, 중국 공산당은 만리장정을 택함으로써 살아남아 나중에 중국의 주인이 됩니다. 이렇게 와해된 조직 중에 광동 꼼뮨이라는 조직이 있었습니다.

모택동이 농민 속으로 숨어든 데 반해, 이들은 마르크스 이론에 더 충실해 노동자들을 혁명의 주체세력으로 설정하고 대도시에서 봉기했습니다. 바로 광동성의 대도시에서 말이죠.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그 운동에 가담했던 세력들은 뿔뿔이 흩어져 다른 공산주의 조직으로 흡수됩니다. 김산은 조선인으로 바로 이 광동 꼼뮨에 참가했던 사람입니다. 이 이름 없는 혁명가의 짧은 인생역정을 님 웨일즈가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 책은 1980년대를 산 대학생과 젊은이들의 가슴을 한 동안 흔들어놓은 책입니다. 모두 마음속에서 혁명을 꿈꾸던 그때 혁명가의 진정한 삶을 본보기로 보여준 김산을 닮으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끼친 영향은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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