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란 소설가

연무대로 아이를 보내고 잠 못 드는 밤, 혼자서 추억을 회상한다. 집안 곳곳 아무리 둘러봐도 아이는 없고 냄새만 남아 재롱부린다.

살점이라도 떼어 먹이고 싶던 애절한 순간들, 처음으로 동화책을 사 주었던 날의 기쁨, 처음으로 엄마하고 불렀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일주일여 전부터 발 밑으로 서서히 고여오는 눈물을 감지하고 난 강한 엄마려고 무진 애를 썼다. 누군가 톡 건드리기만 하여도 봇물돼 쏟아질 것만 같은 눈물, 어디에 그토록 매운 설움이 숨어 있었던지. 그러나 막상 연무대로 들어서면서는 오히려 담대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 내가 한 일이 뭐 있나, 제가 잘 자라주었지. 그런데 연무대로 들어서는데, 새까맣게 많은 인파에 이미 난 탈진한 상태일 수 밖에 없었다. 어금니를 얼마나 물었던지. 애 아범은 언제부터인가 한 걸음 뒤에서 따르고.

드디어 오후 1시 무정한 시계바늘은 거기에 멈추고.

‘오늘 입대하시는 신병들은 연병장 가운데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내 양손은 나도 모르게 아이의 어깨에 올려져 있었고,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매운 설움을 간신히 억누르는데, 오히려 내 등을 토닥이는 손길, 그리고 ‘엄마, 갔다올게요’ 한마디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벅저벅 들어가고. 난 뒷모습이라도 한 번 더 보려고 호당거리다 넘어져 발목이 겹질리고, 누군가 혀차는 소리에 출렁거리던 봇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이 순간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초특급 필살기의 힘을 빌어 버티고 서서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사회자의 몇 마디에 아이들은 이미 군인이 되고 있었다. 두어 번의 열중쉬엇 차렷을 하고는 피 흐르는 기계가 되어 정확한 속도에 따라 함성이 우러나오고, 오른손을 휘두르며 부르는 노래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노래를 들으며 벌게진 눈동자로 고개를 돌리는 아버지들. 몇몇 아버지들의 말마따나 아이들은 이미 그 자리에 서기전부터 군인이 돼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이 밤 내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뒤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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