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문학을 시작할 무렵에 평론을 써서 대학에서 주최하는 작은 상을 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관련 자료를 꼼꼼히 읽으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습니다. 평론가들이나 학자들이 사용하는 문장과 우리가 현실 생활에서 쓰는 문장구조 사이에는 상당히 다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게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어로 써서는 그럴듯한 평론이 잘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평론가들이나 학자들이 쓰는 문장을 구사하려고 하다 보니 그들의 쓰는 말투를 새로 익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어가 구어체라고는 하지만 문어체스러운 면이 평론에는 아주 많았습니다. 바로 이 차이를 어렴풋이 느끼고 문어체스럽게 글을 써서 상을 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오덕의 책을 읽다 보니, 바로 이 문어체스러운 문장과 낱말이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어와 영어가 짬뽕이 된 엉터리 국적불명의 말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한 문장의 기원은, 우리가 고등학교 때 달달 외웠던 최남선의 독립선언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외우면서 좀처럼 외워지지 않던 이유가 제 대가리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생판 듣도 보도 못하던 일본어 번역 투의 엉터리 문체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고 실로 기가 막히고 화가 치밀었습니다.

상류층이 언어로 사기 치는 행태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이제 상류층의 기호도 많이 달라졌죠. 옛날 양반들은 한문문장을 쓰다가 일본에게 나라가 망하면서 재빨리 일본어 번역 투로 바꾸었다가 해방 후 미군이 진주하면서부터는 영어로 자신의 영혼을 바꾸는 중입니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 특히 문장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심어진 낯선 문장이며 문체라는 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사람이 바로 이오덕입니다.

이오덕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몇 차례나 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내 영혼 속으로 들어와 뿌리내리고서는 마치 자기가 주인인 양 행세한 것을 볼 때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한 동안 오덕주의자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정말 많은 부분 글을 쓰면서 낯선 문장과 말을 버리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아직도 문어체스러운 버릇이 튀어나옵니다만, 그래도 옛날 평론을 쓸 때 잠시 먹었던 생각에 견주면 많이 좋아진 셈이죠. 제가 구사하는 문장이 어딘가 다른 사람이 쓴 문장보다 읽기 편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 이오덕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제 젊은 영혼을 뒤흔들어놓은 책입니다. 시리즈로 5권까지 나왔고, 아울러 ‘우리문장 바로쓰기’라는 책도 나와서, 문장을 구사할 때는 저는 늘 이오덕의 글을 생각하며 씁니다. 아직도 오덕주의자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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