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영 수필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바람에 전신을 내 마껴 버린 나무들이 온 몸을 떨고 있다. 그렇게 떨릴 때마다 나무의 떨켜 끝에서 오색의 이파리들이 물결처럼 여울지며 쏟아져 내린다. 떨어져 내리면서 공중을 선회하는 나뭇잎들은 붉다 못해 선홍빛이다. 아마도 자기의 분신을 떠나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절절한 아픔에 몸 안의 모든 진액들이 쏟아져 나와 저토록 처절하리만큼 고운 빛깔이 된 것은 아닌가 싶다. 산자락에 나부끼는 단풍잎들은 웬지 서로 다른 빛깔을 띠고 있다. 이제 막 떨어져 내리는 것들은 선홍의 붉은 빛이지만 이미 내려앉은 이파리들은 아주 부드러운 자색이다. 어찌 보면 그 눈물겹도록 고운 빛깔 속에는 한 생을 마무리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서려있지만 이미 내려앉은 자색의 부드러움 속에는 아름다운 체념과 겸허함이 녹아 있어서는 아닐까.

만추의 산자락은 슬프고도 아름다워 보인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애틋하게 넘나드는 햇살과 산허리를 휘감아 돌며 토해내는 갈바람의 수런거림은 일탈을 꿈꾸며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길손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가을 산이 토해내는 이 쓸쓸하면서도 달콤한 향기. 그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되어,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되어 가슴 하나 가득 안겨온다. 어느 시인은 ‘어깨에 내려앉은 한 잎의 낙엽에서도 인생의 무게를 느꼈다’고 한다. 떨어져 내리는 그 가벼운 마른 잎 하나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어찌 인생의 무게와 비교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어찌 보면 저 작은 이파리들도 성숙을 향한 함성으로 가득했었고 모진 비바람 속에서 서로가 살갗을 비벼대며 견뎌낸 수많은 날들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그들이 살아낸 삶의 무게 또한 우리 인간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을 꺼라 싶기도 하다.

이 산자락에도 삶과 죽음이 존재한다. 수명을 다하고 산허리를 베고 누워 있는 것들은 그 자리에서 썩어져 다음 생을 위한 하나의 자양분이 되어 주며 자신의 자리를 내어줌으로서 그 터 위에 또 하나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 이렇게 소리 없이 반복되는 아름다운 순환을 통해 자연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저들도 우리네 인생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묵묵히 살아 내고 있는 것일 게다.

한 생을 마감한 낙엽들은 눈보라와 매서운 칼바람을 견디며 시린 외로움에 떨고 있는 나목들의 발치에 누워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 가리라.

나는 지금 만추의 길목에서 서 지나온 내 삶의 언저리를 돌아본다. 풋콩 같은 비릿함이 배어나는 싱그럽고 풋풋했던 시절. 다가 올 미지의 세계를 꿈꾸며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어 얼마든지 드높이 날수 있을 것 같았고, 내 삶의 꽃밭에는 달콤한 향기로 충만하리라는 생각에 꿈에 부풀었던 시절이 있었다. 설익은 풋과일처럼 시고 떫으면서도 순수의 열정으로 뜨거웠던 그 때가 내 인생의 일막이었다면, 땀내로 뒤범벅이 되어 삶의 현장을 넘나들었던 때는 한 이막쯤에 해당하리라. 심고 가꾸며 열매를 맺어가야 했던 그 때를 살아내는 동안 주어진 삶의 몫이 너무 버거워 주저앉고 싶었었다. 등허리가 휘어질 수밖에 없는 무거운 짐을 어금니를 깨물고 지고 가느라 가슴 속에서 뜨겁게 차올랐던 꿈의 크기가 날로 작아지는 것을 알면서도 삶의 무게에 짓눌려 뒤 돌아 볼 여유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산다는 것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나날들이었다. 참으로 버거운 세월이었지만 용케도 잘 견뎌내었다는 생각에 안도한다.

삶의 종장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삶이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깊은 사유의 뜰이 부족해 작은 것이지만 아주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가 남는다. 내 인생의 중심이었던 날들. 숲의 봄여름과 같았던 젊은 날들을 지나오면서 얼마만큼의 사유의 시간들을 가졌던가. 내가 가꾸어온 과수 목에는 먹을 만한 열매가 얼마나 열려져 있었는가. 그리고 고목이 되어 서있는 이 나무에는 쉼을 얻고 싶어 하는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는가 하고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보지만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는데 전 생애가 걸리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기의 분신을 모두 털어내고 의연히 서 있는 고목들을 바라보며 나이 들어가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주억거린다. 이제 가슴 속에 들끓었던 욕망들을 잠재우며 남아 있는 삶일랑 본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오늘 나와 마주한 이 가을 산에는 수많은 발걸음들이 오가고 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그들은 거의 달려가다시피 가고 있다. 숨고를 새도 없는 듯 헐떡이면서 어디로 무엇을 얻기 위해 저리도 분주히 가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저들도 일탈을 꿈꾸며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쇄한 바람소리와 산 아래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벗하며 쉬엄쉬엄 걸어가는 것도 좋으련만. 가다가 힘이 들면 가을 산이 마련해 준 아름다운 융단 위에 털퍼덕 주저앉아 알싸한 마른 잎 향기를 숨 쉬며 묵상에 잠겨 보는 것도 좋으리라.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등 도토리나무 가족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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