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700년 춘추시대, 초(楚)나라는 대규모 군대를 출병하여 작은 제후국인 교(絞)나라를 공격했다. 이는 교나라가 운나라와 연합해 초나라를 멸망시키고자 하는 밀약을 사전에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초나라의 공격을 받게 된 교나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긴급히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모든 병사를 동원해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일부 신하들이 초나라에 맞서 싸우고자 했지만 기세등등한 초나라 군대를 대항해서 싸우다가는 망하고 말 것이라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철저히 수비 위주의 작전을 펼쳤다. 성을 굳게 지키며 장기전에 돌입한 것이었다.

사실 교나라의 도성은 지세가 험해 지키기는 쉽지만 공격하기에는 어려웠다. 초나라 군대가 기세를 몰아 여러 차례 공격을 가했지만 그때마다 교나라 군대에게 모두 패하고 말았다. 두 나라 군대가 서로 경계를 하면서 한 달 이상을 대치하고 있었다. 이때 초나라의 장수 굴하(屈瑕)가 교나라의 정세를 자세히 분석한 뒤 계책을 내었다. 이는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꾀로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굴하는 곧바로 초나라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작은 물고기를 미끼로 하면 큰 물고기를 낚을 수 있습니다. 지금 아군이 무모하게 적의 성을 공격하기보다는 미끼로 적을 유인하면 쉽게 이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아군의 일부 병사들을 나무꾼으로 변장시켜 산에서 땔나무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땔감을 가득 싣고 교나라의 도성을 지나가면 분명 교나라 군사들에게 저지당하고 땔감은 모두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한 달이 넘도록 포위당한 터라 교나라는 땔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며칠을 계속 땔감을 싣고 도성 앞을 지나가면 교나라 병사들은 틀림없이 성을 나와 서로 그것을 빼앗으려 할 것입니다. 그때를 기회로 공격하면 성을 쉽게 탈취할 수 있습니다.”

이에 초나라 왕이 적이 그렇게 쉽게 걸려들겠느냐고 의심하며 물었다. 굴하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마음 놓으십시오. 교나라는 작은 나라라 신하와 장수들이 경박하고 둔합니다. 경박하면 꾀가 부족하고 둔하면 판단이 어리석기 마련입니다. 이 정도의 미끼라면 교나라는 반드시 걸리고 말 것입니다.”

초나라 왕이 굴하의 계책을 따르기로 했다. 첫날 교나라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나무꾼 30명을 사로잡고 땔감을 압수했다. 둘째 날은 교나라 병사 수백 명이 성에서 나와 지나가는 나무꾼들을 저지하고는 그 땔감을 모두 압수했다. 셋째 날은 나무꾼 일행이 성문 앞을 지나가자 교나라 병사들이 앞 다투어 성문을 나와 나무꾼을 사로잡고 수십 수레 분량의 땔감을 압수해 의기양양하게 성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를 기회로 성 북문 앞 산속에 매복하고 있던 초나라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돌진하자 너무도 손쉽게 교나라 성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날로 교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포전인옥(抛塼引玉)이란 벽돌을 던져 귀한 옥을 얻는다는 뜻이다. 병법에서는 미끼를 던져 적을 제압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또 다른 의미로는 다른 사람의 고견이나 훌륭한 솜씨를 보기 위하여 자신이 먼저 미숙한 의견이나 솜씨를 보여준다는 겸손의 의미도 담고 있다. 세상살이에서 이익을 얻겠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미끼를 쓸 줄 알아야 한다. 길거리에 동냥하는 앉은뱅이도 생각지도 않은 미끼를 보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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