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10여년 전 일이다. 그 때도 지금처럼 쌀농사가 대풍을 이루었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니 쌀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그로인한 농민들의 불만은 높아만 갔다. 연일 이어지는 농민들의 시위로 관공서나 농협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때를 만난 것은 각종 매스컴이다. 신문은 쌀 문제 해결을 위한 각종 특집기사를 내고, 각 방송은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토론회를 연이어 방송하였다.

하루는 본부장이 급히 나를 찾으셨다. “류 팀장, 조금 전에 00방송국으로부터 토론회에 나와 달라는 전화가 왔었소. 쌀 문제만큼은 농협의 가장 큰 현안이라 내가 나간다고는 했는데, 사실,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그래서 류 팀장이 나갔으면 하는데” “예, 알겠습니다. 양곡업무가 제 담당이니 제가 나가겠습니다” 그 시간부터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쓰고, 외우고, 직원들과 함께 예행연습까지 했건만 막상 방송국 조명이 켜지니 눈앞이 깜깜해 진다.

생방송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또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분장을 지우고 방송국을 나오자 그제야 긴 한숨이 나왔다. “여보, 잘했어요. 당신 이제 보니 마이크 체질인 것 같아요. 저도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혹시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나 해서요. 참, 그리고 많은 분들이 격려 전화가 왔었어요” 오히려 아내의 음성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다음날 사무실에 나오니 직원들이 박수를 치며 반긴다. 본부장께서도 흡족하셨는지 나를 부르신다. “앞으로 류 팀장은 충북농협의 대변인 역할을 하시오. 이제부터는 어떤 토론회를 하던지 류 팀장이 나가시오”하며 내 손을 굳게 잡으셨다.

하루는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권사님 한분이 나를 부른다. “집사님, 일전에 TV 토론회를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집사님처럼 말씀을 잘 하시는 분이 계신 줄 몰랐어요. 그래서 혹 시간이 있으시면 우리 아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으면 해서요. 회사 면접만 보면 자꾸 떨어져서…”, “아닙니다. 저도 많이 떨었습니다. 어째든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인사과장을 하면서 경험했던 면접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해주었다.

다음날 권사님은 아들을 데리고 직접 우리 집을 방문했고, 나는 면접 시 인사와 말하는 방법 그리고 태도 등을 직접 시범까지 보여주며 가르쳐주었다.

한 달쯤 지나서 권사님과 아들이 재차 우리 집을 방문했다. “집사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우리 아들이 가고 싶은 회사에 합격했습니다” “그래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사실 말 잘하는 법은 우선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첫째이고, 그 다음은 질문에 대한 답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말은 쉽지만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제분은 면접경험이 많아 모든 것은 잘하는데 자신감이 부족해 자꾸 시선을 흐리고 있어 그것을 집중적으로 교정해 주었습니다. 저도 토론회 나가기 전에 많이 연습합니다. 이 세상에 노력 없이 이뤄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차를 마시던 권사님과 아들은 나의 말에 동의 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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