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부소산성에 가면 낙화암이 먼저 생각난다. 산성이라는 건 까맣게 잊어버린다. 백화정에서 사진 찍고,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하얀 옷을 입고 낙화가 되어 백마강으로 몸을 날리는 모습을 그리다가 고란사 감로수로 깔깔한 목을 축이고 돌아서는 게 전부이다.

이마에 볕이 짠들짠들한 어느 초가을 날에 출발했다. 나의 알량한 상식은 성곽의 윤곽도 그리지 못하는데 부여군에서 발행한 안내서에는 산책길 위주로 되어 있었다. 부소산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문화적 자부심보다 시민의 산책길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성곽의 윤곽을 짐작할 수 있어 답사에는 도움이 되었다.

부소산성은 백제 동성왕 때(500년) 산봉우리에 테뫼식 산성을 쌓았는데, 그 후 성왕 16년(538년) 천도를 전후해 개축됐다고 한다. 물론 백제의 왕성인 사비를 수호하기 위한 산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부소산성은 웬만한 다른 성과 다르다. 테뫼식 산성도 포곡식 산성도 아니다. 정상부를 빙 돌아 쌓은 테뫼식 산성과 포곡식 산성이 합쳐진 이중의 성이다. 현재 관광안내소에서 삼충사, 영일루, 궁녀사를 잇는 테뫼식 산성과 구드레조각공원에서 백화정을 거쳐 백제관광호텔로 내려가는 포곡식 산성이 연결됐다. 총길이 2.5km 정도이지만 외곽을 방어하는 나성과 연결하여 거대한 왕성을 이루어낸 것이다. 또 가까이에 청산성과 청마산성이라는 보조 산성도 갖추고 있어 공산성과 함께 왕성으로서의 성곽발달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부소산문을 지나 삼충사, 영일루, 조룡대, 고란사에 이르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삼충사를 지나자 토성의 윤곽이 드러나 보인다. 삼충사를 뒤로 영일루 쪽으로 돌아가는 토성이다. 가슴이 뭉클하도록 반가웠다. 나무가 울창하고 지난가을 낙엽이 쌓여 자세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부소산성은 흙으로만 쌓은 것이 아니라, 밑에 커다란 돌을 쌓고, 위에 흙을 쌓은 것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토성의 단면을 잘라보면 아래로부터 네 층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맨 아래층은 붉은색의 진흙으로 판축했는데 바깥쪽에는 4단의 석축이 남아 있다고 한다. 맨 위층에서는 조선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축과 개축을 거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기록에 전하는 전체 성벽 규모는 높이 내면 7.6m, 외면 3.4m, 너비는 8.6m이다. 1500년 세월 비바람을 견디어 오늘까지 토성의 흔적이 뚜렷한 것을 보면 당시의 축성 기술을 짐작할 만하다.

영일루로 올라가는 이정표를 버리고 성 위로 난 흙길을 따라 걸었다. 이렇게 윤곽이 뚜렷한 토성을 왜 전에는 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나무를 베고 잡초 대신 잔디를 심으면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도 있고 보존도 될 것이라고 생각됐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백마강 쪽으로 가는 포곡식 성과 군창지 뒤편으로 가는 테뫼식 산성이 보였다. 여기가 테뫼식 산성과 포곡식 산성이 갈라지는 말하자면 산성의 사거리였다. 나는 너무나 신기해서 한참을 이곳에서 서 있었다.

나무가 우거져 서늘한 숲길로 궁녀사, 사자루 쪽을 향해 천천히 걸으며 사비로 천도하면서 그렸을 성왕의 꿈과 무너진 백제를 상상하니 마음은 더욱 헝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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