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한(漢)나라 고조 유방이 죽자, 부인인 여후(呂后)가 권력을 잡았다. 유씨을 몰아내고 여씨천하를 만들려했다. 하지만 얼마 후 여후가 죽자 여씨 권력은 유방의 개국공신들에게 제거되고 말았다. 이에 개국공신들이 유씨 황제를 다시 이으려 유방의 아들들을 찾아 나섰다. 멀리 황량한 내몽고 지역 대(代)나라 왕인 어린 유항(劉恒)이 살아있었다. 이는 그 모친이 평소 겸손하고 욕심이 없고 남과 다투지 않았기에 살벌한 여후의 경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앙의 대신들이 유항을 찾아갔다. 그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청하였다. 하지만 유항은 자신의 신하들에게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의견을 물었다. 비서실장인 장무(張武)가 대답하였다.

“중앙의 대신들은 고조 유방과 함께 권력을 쟁취한 이들이라 왕에게는 아버지뻘 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부리기가 곤란하니 바로 가기 보다는 상세히 상황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어 군사참모장인 송창(宋昌)이 대답했다.

“소인이 정세를 살펴본 결과 가는 것이 유리합니다. 백성들은 여전히 천하가 유씨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중앙의 대신들이 이 먼 변경까지 와서 황제에 오르기를 청한 것입니다.”

의견이 갈리자 유항은 모친에게 물었다. 모친이 말하였다.

“서두르지 마세요. 먼저 장안에 사신을 보내어 상황을 알아보세요.”

그 말대로 유항이 사신을 보냈다. 사신이 다녀와 보고하였다.

“왕께서는 가서 황제의 제위를 이어도 되겠습니다.”

마침내 유항이 신하들을 이끌고 장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중앙의 권력은 재상 주발이 쥐고 있었다. 장안 성 밖까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마중 나와 무릎을 꿇고 유항을 맞이하였다. 그러자 유항도 얼른 무릎을 꿇어 겸손히 예를 갖추었다. 그러자 주발이 잠시 단둘이 이야기 나누기를 청하였다. 이때 송창이 나서서 말했다.

“아니 됩니다! 재상께서 말씀하려는 것이 사적인 일이라면 오늘은 자리가 아닙니다. 공적인 일이라면 대중 앞에서 말씀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자 주발이 주저하더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황제의 옥새를 유항에게 바쳤다. 유항이 말하였다.

“나는 아직 황제도 아니고, 반드시 황제가 된다고 확신할 수도 없소. 다만 이 옥새는 내가 보관할 터이니 다음을 기약합시다.”

유항은 곧바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영빈관에서 겸손히 아홉 달을 보내며 정세를 살피고 내정을 준비하였다. 이는 수중에 병사 하나 없는데 옥새하나만 달랑 들고는 유씨의 종실들과 개국공신들을 다스릴 묘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유항이 황제에 오르니 바로 내정을 바로 잡은 문제(文帝)였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본기’에 있는 이야기이다.

일겸사익(一兼四益)이란 한 번의 겸손으로 하늘과 땅과 사람과 신으로부터 뜻한 바를 얻는다는 뜻이다. 정치와 행정이 겸손하면 백성이 편하고, 백성이 편하면 나라가 부강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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