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5월이다. 녹음이 짙다. 넝쿨 장미의 붉은 행렬이 울타리에 이어진다. 정열적이라고 할까?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는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을 보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 듯하다. 운동장을 질주하며 생동감 있게 뛰는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듯 보여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미래가 밝음을 느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게 학교에 잘 적응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간혹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필자는 업무의 특성상 한 달에도 몇 번씩 자녀 문제로 속을 끓이는 학부모님들의 상담 전화를 받곤 한다. 전화를 걸어오신 분은 대체로 10대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이다. 전화를 받으면 어떤 부모님은 한숨부터 쉬시다가 채 말씀을 다 마치시지도 못하고 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가슴이 답답해지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식 때문에 속을 썩이는 부모님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얼마나 답답할까? 누구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고 말하기도 힘들었을 그 안타까운 심정에 공감이 간다. 어쩌면 우리 같은 기성세대들은 자식들이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착실히 다니면서 그저 열심히 공부해 주기를 바란다.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들 중에는 기성세대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 즉 매일매일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입시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일들에 대해 막연히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청소년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으면 싶다.

그리고 그게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식에게 닥친 일일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럴 때 학부모님들은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사는 것도 힘든데 왜 자식들마저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는 푸념은 일단 접어 두어야 한다. 견디기 힘들고, 욱하는 감정이 앞설 수도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자녀의 장래가 아닌가? 우선 자녀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보자. 당연히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상담도 해야 한다. 그래도 자식이 끝끝내 학교를 벗어나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할까?

필자는 그럴 때가 바로 부모가 져주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학생의 주장대로 좀 지켜보면 어떨까? 사실 공부는 본인이 하고 싶을 때 해야 학습효과도 크고 목표 달성도 쉬운 법이다.

학생은 학교를 그만 두고 싶어 하는데 부모나 선생님의 힘으로 학업을 억지로 끌고만 가려고 한다면 그 공부가 제대로 될 리도 없지 않은가? 일단 지켜보자! 그리고 믿어보기로 하자! 학부모님도 청소년기에는 부모님의 속을 무던히 썩혀드리지 않았던가? 학부모님도 학창시절에는 언제나 학교 가기가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 않았던가? 돌이켜 생각해 보자. 자녀를 믿고 일단 맡겨보자. 혹시 더 잘못되지는 않을까? 조바심도 나고 답답도 하겠지만 그래도 자녀를 믿는 방법 말고는 더 좋은 방법이 없지 않은가? 정작 걱정이 되는 것은 학업이 늦어지는 것보다 인성이 망가지고 사회적으로 부적응하는 것이 아닌가? 부모님의 조바심과 걱정, 안타까움 이런 것을 언젠가는 사랑하는 내 자식들이 알아 줄 날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믿어보자! 믿고 지지하고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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