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사람들은 운주산 비암사에는 배암이 있다고 생각했다. 새벽마다 뱀굴에서 뱀이 총각으로 변신해 내려와 탑돌이를 하며 사람 되기를 발원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비암사를 ‘뱀절’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1960년 부근 쌍류리에 거주하는 한 대학생의 기지에 의해서 ‘배암(蛇)’ 아니라 ‘비암(碑岩)’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그의 남다른 예지로 1300년 가까이 감추어졌던 비밀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극락보전 앞 삼층석탑 상륜부에 대개 복발이 있어야 할 부분이 특이해 의문을 제기하는 바람에 조사한 결과 불비상 3점은 찾아냈다. 국보 제106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癸酉銘全氏阿彌陀三尊石像), 보물 제367호 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己丑名阿彌陀如來諸佛菩薩石像), 보물 제368호 미륵보살반가석상(彌勒菩薩半跏石像)이 그것이다. 부처님을 부조한 이 석상들은 작지만 모두 비석 모양이라 불비상이라 부르게 됐다. 이 불비상은 매우 특이한 불교미술품이고 연기지역에서만 발견된다. 의미 있는 것은 제작 시기가 백제 멸망 13년 뒤인 673년에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이 만들어지고부터 15, 6년간이라는 점이다.

백제 부흥운동 과정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고 알아갈수록 백제의 최후를 안타까워하는 내게 불비상이 넌지시 일러주는 것은 매우 많았다. 비암사에서 전시용 불비상을 보았지만 궁금증을 견딜 수 없어 국립청주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의 허락을 받고 학예사의 한 분의 도움을 받아 촬영하면서 설명을 들었다. 모니터에 확대해 보고 싶었다. 우선 국보로 지정받아 제일 전면에 전시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을 들여다보며 전씨의 심경을 생각해 보았다. 총 높이는 43cm, 두께는 26.7cm인 비석 모양의 돌에 부처님이 부조됐다. 전면과 배면 그리고 옆면에도 그림이 있다. 전면에는 이름대로 극락정토를 관장하는 아미타부처님이 연꽃 자리 위에 설법인으로 가부좌를 틀었다. 몸에 두른 법의 자락이 무릎을 덮었다. 흘러내린 주름이 살아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주름 사이로 실에 꿴 구슬(연주)이 보이고, 머리에도 연꽃과 연주가 아름답다. 본존불 좌우에는 보살인지 인왕인지 나한인지 칠존상이 반듯하게 서서 아미타 부처님을 따른다. 뒤에서 상반신만 내보이는 상은 아마도 나한인 듯 싶다. 본존은 앉아 있고 그 왼쪽에 3위 오른쪽에 4위가 대좌보다 조금 높은 연꽃무늬 자리에 반듯하고 공손하게 서 있다.

제작연대인 계유년은 백제가 멸망한지 13년 만인 673년으로 추정된다. 전면의 아랫부분에 새겨 넣은 글자에 의하면 당시 연기 일대의 백제 유지 전씨라는 사람이 백제 역대 국왕과 대신들, 칠세 부모와 전쟁으로 죽은 백성을 위해 절을 짓고 극락왕생을 발원하였다고 한다. 인명으로 백제의 대성인 전씨, 진씨, 목씨가 나오고, 백제 관명과 신라관명도 나온다고 학예사는 설명한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은 작은 불비상이다. 무한의 우주에 비하면 하나의 점에 불과한 미술품이다. 그러나 고통 받은 중생이 지향하는 크나큰 정토세계가 담겨 있다. 여기에 백제의 역사와 백제 유민의 감출 수 없는 아픔이 숨어 있다. 최근 정치인들의 역사관에 대한 시시비비로 나라가 시끄럽다. 역사는 어리석은 정치가가 힘으로 묻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훗날 이렇게 작은 불비상 하나에서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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