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148년 한(漢)나라 효경제(孝景帝) 무렵, 흉노가 상군 지역으로 대거 쳐들어왔다. 황제는 급히 환관 중귀인(中貴人)에게 이광(李廣)장군을 거느리고 흉노를 무찌르도록 했다. 중귀인이 기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변방의 정황을 살피다가 뜻밖에도 흉노 병사 세 명을 만나 싸우게 되었다. 하지만 흉노 병사들이 날래게 활을 쏘아 중귀인은 상처를 입고 기병들은 모두 몰살당했다. 중귀인이 간신히 도망쳐 와 이광장군에게 상황을 알렸다. 이에 이광이 말했다.

“흉노 세 놈이 우리 기병 수십 명을 이겨내다니, 그놈들은 틀림없이 독수리 사냥꾼일 겁니다.” 하고는 곧바로 기병 1백 명을 거느리고 몇 십리를 달려 흉노 병사를 발견했다. 이광이 부하들에게 좌우로 넓게 포진하라고 명령하고, 친히 활을 쏘아 둘은 죽이고 하나는 사로잡았다. 생포한 자의 말을 들어보니 그들은 과연 흉노의 독수리 사냥꾼이었다.

이광이 생포한 자를 단단히 결박하라 명하고 말에 오르는 그 순간, 눈앞에 흉노의 기병 수천 명이 멀리 둘러 있는 것이었다. 신중히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적의 병력 수에 이광의 기병들은 크게 놀라 급히 말을 되돌려 도망가려 했다. 그러자 이광이 엄하게 명했다.

“멈춰라! 지금 우리는 본진에서 수십 리 떨어져 있다. 만약 우리가 급히 도망친다면 흉노는 우리를 추격해 전부 몰살시킬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두르지 않으면 적은 우리를 유인부대인 줄 알고 감히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이어서 부하들에게 전진을 명했다. 그렇게 흉노의 진지 2리 앞에 멈춰 섰다.

“모두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어라!”

그러자 기병 중 하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장군! 적들은 수가 많고 가까이 있는데 만일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시려고 안장을 풀라 하십니까?”

이광이 대답했다. “저놈들은 행여 우리가 달아나면 유인부대가 아니라고 여겨 쫓아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안장을 풀면 저놈들은 우리를 틀림없이 유인부대인 줄 알 것이다.”

과연 안장을 풀자 흉노 병사들이 도리어 놀라 한 걸음 물러갔다. 해가 저물자 백마를 탄 흉노 장수 하나가 앞에서 오고가며 순시하고 있었다. 이광이 그 장수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 순간 말에 올라 쏜살같이 내달려 흉노 장수의 목을 베고 되돌아왔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리고 다시 안장을 풀고 부하들에게는 편히 눕도록 했다.

어두워지자 흉노 병사들은 여전히 경계만 할뿐 감히 공격해오지 못했다. 한밤중이 되자 흉노군은 어느덧 멀리 철수해 버렸다. 이광은 새벽이 돼서야 비로소 부하들을 이끌고 본진으로 되돌아왔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 이광 장군 편에 있는 고사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란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삶이 위태로운 약자들은 항상 자신을 모르고 심지어 적도 모르는 경우이다. 그래서 항상 패배하는 것이다. 세상의 강자는 자신의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공격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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