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칼럼]3·1운동 정신과 남북통일
[오늘의 칼럼]3·1운동 정신과 남북통일
  • 충청매일
  • 승인 2016.03.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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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 건양대학교 군사경찰대학 교수

3·1운동의 발생 배경은 2·8독립선언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영향과 일본의 압제가 원인이었다. 여기에 1919년 1월 22일 고종황제의 독살설로 인하여 일본의 부당한 조선 점령과 폭력에 의한 통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갖게 되면서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손병희 등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식을 가진 후 탑골공원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함께 독립 선언서 낭독하고 곧바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자 이 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됐던 것이다. 그러기에 삼일절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더없이 의미 있는 운동으로 세계사적으로는 강대국에 의해 재편된 세계질서에 대해 도전한 최초의 저항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큰 것이다.

박은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200여만명이 참가해 7천509명이 사망, 1만5천850명이 부상, 4만5천306명이 체포됐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소였다고 한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이 무자비하게 나서면 나설수록 운동은 더욱 확산돼 갔고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희생할 각오를 하고 거리로 나왔다. 그동안 억눌렸던 독립에 대한 열망이 한꺼번에 활화산처럼 분출됐던 것이다. 운동과정에서 죽음과 고통을 당한 이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지구촌의 많은 나라들이 대한민국의 존재와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을 알게 됐으며 일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본은 대한민국을 나약하고도 힘이 없는 민족으로만 보았을지 모르겠으나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저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보게 됐을 것이다. 결국 이 운동으로 인해 조국을 되찾겠다는 독립운동이 불붙기 시작하고 여러 형태로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한 결과들이 결국은 8·15해방을 맞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마디로 3·1운동은 대한민국을 다시 태어나게 한 우리 민족사에 길이 빛날 운동이었다고 평가 받기에 충분하다. 해방 이후 6·25전쟁이라는 가슴 아픈 동족간의 전쟁이 발생해 또 다시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3·1운동으로부터 이어지는 나라사랑 정신과 그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은 민족정신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60여년 만에 세계사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정말 대단한 민족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세계 속에서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어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완전한 독립이 된 것이 아니다. 완전한 독립이 되려면 남북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남북통일이 되는 날이 대한민국이 완전하게 독립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북한의 행태로 보아 남북통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통일의 열망을 끝까지 가슴에 품고 남북 간의 장벽을 하나하나 걷어내면 언젠가는 분명 통일의 꿈은 이루어 질 것이다. 삼일절이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완전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노력하라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완전독립, 남북통일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이루기 위해 모두가 함께 힘을 모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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