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제주도에 갔다. 사흘간 렌터카를 빌려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제주시와 서귀포를 오가며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집에 있어도 자유롭지만, 그래도 집을 나오면 더더욱 자유로워 마음이 가벼웠다. 마음이 그러하니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제주도 모든 것이 밝게만 보였다.

그런데 한가지 짜증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주도 사람들의 난폭한 운전 버릇이었다. 수많은 자동차 중에서 어떻게 제주도 주민의 차냐고 반문을 하겠지만, 그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제주도 특성상 관광객이 많은 고로, 도로의 태반은 렌터카로 보였고, 그런 차들은 모두 ‘ㅎ’을 초성으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그러니 제주도 본토박이 차와 관광객이 빌린 차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 어느 지역을 가도 도로사정이 정말 좋다.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로를 막론하고 반듯하고 시원스럽게 뚫려있다. 제주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횡단도로가 한 두 개였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몇 개가 새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도 없었고, 그와 연계된 도로들이 사방팔방으로 거미줄처럼 뻗어있었다. 초행이 아니어도 길에서 길을 잃을 지경이었다. 길이 그리 좋아졌으니 운전도 편해야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육지나 제주도나 난폭한 운전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차를 빌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섬인데 하고 우습게 생각했더니, 섬 운전솜씨가 육지사람 뺨따귀 칠 정도다. 거칠어도 너무 거칠었다. 길도 시원시원하고 자동차 성능도 좋고, 내비게이션까지 달려있으니 단속기만 지나면 총알택시처럼 달린다. 잠깐만 한눈을 팔거나 순간 잘못을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도 좁은 틈 사이로 경주하는 레이서처럼 끼어들었다. 위험천만이었다.

육지에서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좁은 공간을 파고들며 끼어들기를 했다. 등줄기에 서늘함이 스쳐가고 머리칼이 쭈뼛 섰다. 그럴 때마다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초행길인 객지사람들로서는 길도 설은 데 제주도 사람들의 난폭운전까지 신경 쓰며 운전을 해야 하니 이만 저만 고충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기들 고장에 관광하러온 손님에게 환대는 못할망정 이렇게 푸대접을 해도 되냐며 제주도 사람들에게 욕을 마구 퍼부었다.

그러다 순간 어떤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수년 전 여름,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계곡의 휴양지를 간적이 있었다. 계곡 초입에는 몇채의 집들이 비탈을 따라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그런데 집들의 삽짝마다 ‘피서객 출입금지’라고 쓴 글씨가 걸려 있었다. 나는 같이 갔던 친구와 이런 산골까지 각박한 인심이 판을 치니 참으로 큰일이라며 성토를 해댔다. 그리고 팻말을 걸은 집주인들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그러다 옆에 여행 왔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었다.

“영업집도 아니고, 관광객이 노바닥 찾아와 이것 좀 달라 저것 좀 달라 하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기 사는 사람들은 성가셔서 어떻게 살겠어요. 놀러오는 사람은 한 번이지만, 현지인들은 맨날이니 집에 남아나는 게 없다구요. 그러니 이 사람들 인심만 탓할 것도 아니라구요!”

현지인들은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일년 내내 계속되는 관광객들의 느긋한 운전을 뒤따르다 가며 생업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난폭운전의 이유가 거기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거의 받을 듯 끼어드는 제주 차량을 봐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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