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을 맞아 초·중·고등학교 등 각급 학교의 동창회 개최를 알리는 현수막 입간판 등 홍보물이 도처에서 눈에 띈다. 주로 체육행사를 여는 모습들이다. 친목을 다지는 데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종래 동창관계는 지연, 혈연과 함께 ‘학연(學緣)’이라는 이름으로 매우 접착력이나 응집력이 강한 관계로 인식돼 왔다. 아직도 정치, 행정 분야 등 권력이나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쟁탈전이나 경쟁적 쟁취가 이어지는 곳에서는 매우 큰 영향력이 행사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대학이나 고등학교 동창간에 특히 강한 연대나 유대 관계를 통해 강력한 응집력을 드러내 보인다. 

인간, 변화 적응능력 가져

동창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한편으로는 크게 변하는 것 같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지난날에는 동창 관계, 선·후배관계가 매우 끈끈하고 엄숙하며 엄격하기까지 했으나 요즈음은 크게 달라졌는데 이는 개인주의적 사고가 지배적인 시대적 변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동창관계란 어떤 관계로 인식해야 할까.  

인간은 성장의 리듬이 매우 특이하다. 인간은 육체적인 성장이 끝나도 미완성이어서 정신적으로 더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 아닌 다른 포유동물들은 짧으면 2~3년, 길어야 15년 내외, 드물게 30년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있지만 인간처럼 50년 이상 사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일정 성장기간이 끝나면 대부분의 동물들은 모든 기관들이 쇠퇴하게 되는데 인간은 다르다. 사람은 계속해서 배우고 생각하면서 지식, 지혜를 쌓아 나아간다. 그래서 ‘평생교육’, ‘평생학습’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따지고 보면, 그래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미완성의 존재이지만 매우 넓은 변화적응능력을 가졌다. 인간은 자신을 완성해 가야할 책임을 스스로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1의 모태에서 가능성만 갖고 출생해서 2의 모태 곧 사회 안에서 문화를 습득하면서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기 마련인데 그때 학교라는 한 울타리, 창 아래서 만나 각종 학습을 하던 그 관계가 ‘동창(同窓)’으로 결코 예사로울 수가 없는 관계인 것이다.

인간은 매우 제한된 본능만을 가지고 자연으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달리 행동을 본능에만 의존하지 않고 문화적 규범에 따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신세대가 선·후배를 몰라보고 유아독존, 나만을 생각하는 의식은 일반 동물의 단순성에 비유함직한 것이다.

결국 동창의 관계는 서로 친근감을 갖고 의지하며 협력하는 가운데 사랑하며 터득하고 배워나가는 관계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폐쇄적인 자연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개방적이고, 상호의존적, 보완적이어야 하기에 스스로 문화적인 환경의 창조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동문, 미완 보충·완성 관계

인간은 스스로가 바람직한 행동을 선택하고 문화를 창조하며 인간의 자아의식과 자유의식 그리고 사고능력을 신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적 조건 하에서는 미완성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문화적 환경 안에서 완성돼 가는 것이다.

이 때 연(緣)이 있는 동문, 동창 관계의 의미를 되새길 수가 있는 것이다. 학창시절 3년 보다 더 긴 기간을 서로 만나 못다 한 연을 이으며 대화하고 협력, 협동하며 피차의 미완을 보충, 완성해 나가는데서 동창의 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아들이 아니고 문화적 유산을 가진 사회의 아들이기에 ‘동창(同窓)’관계를 소홀히 외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창회에서는 제멋대로 탈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간의 어떤 관계도 부정적 기능을 줄이고 긍정적 기능을 늘리려는 노력이 없이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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