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행정학과

2016년은 음양오행에서 빨간 원숭이해로 불린다. 빨간 원숭이라고 하니 40여 년 전 삼일로 창고 극장에서 공연된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이 생각난다. 요절한 배우 추송웅이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원에 제출된 보고서’를 각색하고, 혼자서 기획·제작·연출·연기·분장, 장치까지 한 실험연극으로 당시 강태기의 에쿠스와 함께 폭발적 인기를 가져왔다.

연극은 인간에게 잡힌 원숭이가 인간사회에 적응하면서 느낀 문명사회와 인간세계에 대한 환멸을 독백으로 뿜어내고 있다. 원숭이의 본성을 잃어가면서 외치는 ‘빨간 피터의 고백’은 1970년대 유신, 1980년대 군부독재와 민주화 투쟁의 암울한 시대에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빨간 원숭이 피터의 입을 통하여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이 원숭이가 지금은 한반도에 살고 있지 않지만 제천 점말동굴의 구석기 유물에서 원숭이 화석이 발견되었고, 지명으로도 원숭이를 의미하는 원(猿)자가 사용되고, 삼국시대 이후 각종 자료에서 원숭이 존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면에서 한반도에도 원숭이가 있었다는 것이 정설인 듯하다. 그러나 원숭이는 우리 민족에게 친숙한 동물은 아니다. 그러하다 보니 속담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라는 말이 있을 뿐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실패에 대해 관용하지 못한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서는 안 되고, 박사는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실패나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는 형식문화 체면문화와 연계해 실패나 실수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서 찾도록 한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것은 원숭이 잘못이 아닌 부모 탓이고, 조상 탓이고, 무덤 잘 못쓴 탓을 한다.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원인으로 실패했다고 한다.

현대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이론이 학습이론이다. 학습이론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다. 자신의 실패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서 같은 실수나 실패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면 원숭이가 모방하듯이 실수나 실패를 모방하여 반복하게 되는 것이 세상사이다.

지금은 빨간 원숭이 피터가 고백할 때와 비교하면 잘살고, 민주화되고, 풍요롭다. 그러나 40여 년 전 작은 삼일로 창고 극장을 울린 피터의 고백이 아직도 메아리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인간화돼 가는 원숭이의 고민이 아닌 원숭이가 되어 가는 인간의 고민 때문이다. 원숭이가 등장하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교훈을 준 열자(列子)는 사물이 지혜로서 서로를 속이는 것이 모두 조삼모사와 같다고 한다. 발전됐으나 숫자만 늘었고, 민주화됐으나 투표만 많아지고, 잘 산다고 하나 빈곤은 확대되고 있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 하지만 원숭이와 달라야 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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