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십일일 째, 남해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전남 강진읍~북평면)

▲ 북평면으로 가는 길에 만난 아름다운 호수.

늦어진 일정에 선배들 졸업식 불참…손바닥 글로 축하

중부와 다른 푸른 풀·따뜻한 햇살…남해가 가까워진다

냉장고가 박힌 담장 등 북평 마을 둘러 보는 재미 쏠쏠

 

강진읍을 떠나는데 사이클 경기가 열렸다. 어제는 경기를 위해 강진읍에 머물던 선수들 덕분에 시끌벅적한 밤이었다. 아침부터 분주한 기분이었다. 이곳처럼 외진 동네는 처음인 것 같았다. 국도로 들어가는 대로에서 만두를 한 봉지 사들고 걸었다.

아무생각 없이 걷다 무심코 땅을 보았는데, 누군가가 벗어놓은 목장갑이 해학적인 모습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흔히 요즘 욕으로 쓰이는 ‘엿’의 형태로. 가운데 손가락만 번쩍 들려 있는 모습이 너무 웃겨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냈다. 나 혼자만 웃겼던 것인지 같은 욕을 왕창 먹었다. 사소한 모습에도 너무 재미가 있다.

지도에서 안내하는 길을 가다가 호수를 발견했다. 잠시 멈춰서 보다가, 문득 친한 선배 언니들의 졸업식이 오늘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오늘 서울로 올라가 언니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기로 했지만 늦어진 일정 때문에 참석할 수가 없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선배들에게 졸업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고민하던 중 가방 안에 있는 매직펜을 꺼내 손바닥에 적었다.

“졸업 축하해요. 못가서 미안해요.” 만족스럽게 글이 적힌 손바닥을 보며 이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길 위에 있어서 못가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순전히 안가고 싶은 게 아니라 못가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언니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뿌듯하게 걷던 중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분명 마을길로 들어서는 길이 있어야 하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이리저리  한참을 멈춰서 있다가, 아래 갓길로 들어서는 경운기를 발견했다. 그 쪽은 순전히 산이었는데, 아저씨는 어떻게 저 길로 가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알고 보니 도로 밑으로 작은 터널이 있는  것이다. 태워달라고 할 걸 조금은 후회하며 그 터널로 들어섰다. (물론, 갓길로 들어갈 때는 가드레일을 넘어서 같지만) 내가 찾던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버스들이 다니는 길이다. 좀 전에 보았던 국도와는 사뭇 다른 정적인 분위기, 이런 마을들이 한국에 조금 더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끝자락에 다 달았을 때 화장실이 급해졌다. 무너져가는 문 닫은 주유소와 가정집 들 뿐인 이 마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칡즙을 파는 곳으로 갔다. 의외로 그곳은 마을의 슈퍼마켓인 구멍가게였다. 할머니 두 분이 친구처럼 도란도란 얘기중이셨는데, 무엇이든 사야겠다는 생각에 우유를 하나 집어 들고 계산한 뒤 화장실을 이용했다. 문득 가방에 있던 만두가 생각나 할머니들께 드렸다. 할머니들과 만두를 먹으며 손녀 얘기도 들어드리며 깔깔대고 웃었다. 마치 내가 이 동네의 가장 젊은 아줌마인 듯한 기분이었다. 한참을 얘기하고 놀다 급히 가게를 나왔다. 월출산을 등반하느라 다 찢어진 운동화를 신고 걷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뒤에서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들과의 만남이 도다른 힘이 됐다. 힘들고 몸이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패기가 넘치는 기분이었다.

바다가 점점 가까워지는 남해라서 그런지 높은 산보다는 평지가 많아 걷는 길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춥고 칙칙했던 중부지역과는 다르게 남해와 가까워질수록 들풀이 푸르고 햇살은 따뜻했다.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다리가 보이는 2차선 도로 길가 북평면 허름한 모텔에 방을 잡았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방안에 있기 아까워 배낭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작은 만인 이 곳은 그동안 지나온 산골 동네와는 달랐다. 모텔을 필두로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놓여있는 관광식당이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 같았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모텔 복도에서 양복을 입은 덩치 큰 아저씨들과 마주치는 순간 뭐지 하며 섬 짓 놀랐다. 그들은 서로 존칭을 쓰고 있었다. 단지 출장을 왔을 뿐인데 괜한 선입견을 갖고 지레 놀란 것이다. 

마을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마침 너무 쨍하지도, 어둡지도 않은 5시의 햇살에 기분이 좋았다. 아주머니들이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길래 나도 모르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던졌다. 하긴, 이곳에 어느 외부사람이 들어와 밝게 인사를 할까? 아주머니는 아는 사람인줄 알고 한참을 보시더니, “누구여?”하신다. 그마저도 신이나 “그냥 여행 중입니다”하니 활짝 웃으시며 뭐 볼게 있다고 이곳에 왔냐 하신다. “그러게요, 잠시 머물다가 가려고요.”

들뜬 기분으로 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생각보다 마을은 작았다. 산 쪽으로 조금 더 가니 잘 가꿔진 저택의 입구가 보였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들이 줄서 세워져 있고 작은 나무 대문을 지나가면 그 안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커다란 저택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저택 뒤쪽으로 삼남길 표시가 나타났다. 인적이 없어 저택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왔다.

북평 마을에는 염소들도 살고 있었고, 이상하게 생긴 집들도 많았다. 이웃 주민들끼리 다 친한 모양인지, 담장은 낮았고 대문들은 다 열려있었다. 이런 오픈마인드의 마을은 처음 보았다. 그러다 웃긴 담장을 발견했다. 냉장고가 박혀있는 담장. 시멘트를 쌓아올릴 때 냉장고를 세워두고 덮은 것인지, 냉장고를 나중에 끼워 넣은 것인지. 사실 냉장고 문을 대문처럼 쓰고 있는 기발한 집인 줄 알았으나, 냉장고 문은 철사로 고정돼 있었다. 역시 여행을 하다보면 사소한 풍경에도 자꾸만 혼자 웃게 된다.

터덜터덜 마을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가기 전에 큰 관광식당에 들러 저녁으로 전라도 음식을 먹기로 했다. 반찬이 이렇게나 많이 나오는데 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게 놀라웠다. 작은 마을에 식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반찬이 10가지가 넘으면 남는 게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생각됐다. 공사를 끝마친 아저씨들이나, 남해에 놀러왔던 관광객들이 단체로 버스에서 쏟아져 나와 커다란 식당이 꽉 차버렸으니까.

배부르게 먹고 숙소로 들어가는 데, 어두컴컴한 밤에 내 운동화를 보니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비라도 한 번 더 오면 내 발은 정말 물속에 잠겨버릴 지도 모른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감독 마지드 마지디)에서 운동화에 목숨을 걸던 남매가 생각났다. 나에게도 그 아이들처럼 지금 운동화가 굉장히 절실하다. 어렸을 때 보았던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은 당시 나에게 굉장한 눈물을 선사해줬던 작품이다.

여동생의 하나뿐인 구두를 잃어버린 알리는 집이 너무 가난해 운동화를 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동생과 알리는 수업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이용해 운동화 하나로 골목에서 바꿔 신으면서 며칠 동안 버티는데, 알리는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린다. 직장이 없던 아버지가 우여곡절 끝에 정원일을 구하지만, 자전거 고장으로 사고가 난다. 가난했던 집이 설상가상으로 더욱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가난한 집이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운동화’였다. 동생의 잃어버린 구두를 다른 여학생이 신고 있다는 것을 안 남매는 구두를 찾으려고 그녀를 뒤쫓는다. 하지만 곧 장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구두 찾기를 포기한다. 한 번은, 여동생 자라가 오빠의 큰 운동화를 신고 달리다가 도랑에 신발 한 짝을 빠뜨렸다. 당시 영화를 보던 나는 그 장면에서 제일 가슴을 졸였다. 울먹이며 신발을 신고 오빠에게 간 자라를 보고 알리는 어떻게든 운동화를 구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학교에서 전국 어린이 마라톤 대회를 위해 고학년들이 연습 중이었는데, 달리기 대회에서 3등을 하면 운동화를 상품으로 주는 시합이었다. 선생님을 졸라 테스트 경기 이후 알리가 나가기로 한다. 늘 지각하지 않기 위해 달리던 알리는 마라톤 대회에서 너무 빠른 나머지 3등이 아닌 1등을 했다. 어린 오빠 알리에게 그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은 운동화였는데, 다른 상품을 들고 집으로 들어선 알리는 동생을 본 뒤 눈물을 터뜨렸다. 1등을 하고도 울었던 알 리가 가슴 찡하던 영화였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와 집 앞 정원에 발을 담그고 작은 물고기들이 불어터진 알리의 발을 간질이는 장면, 사고가 났던 아빠가 신발 두 켤레가 들어있는 상자를 싣고 집으로 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눈물을 만들어내는 영화였다. 가난한 집안의 무척 현실적인 영화지만 감동을 억지로 쥐어짜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울리는 영화였다.

 글·사진/안채림

(광운대 경영학& 동북아문화산업과 복수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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