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7대 국회를 구성할 4·15 총선이 열흘 남았다. 이번 총선은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 뒤 처음 치러지는 선거로 그 의미가 크다. 후보자와 유권자가 함께 법 개정 취지에 맞게 돈 선거와 흑색선전 등 불법행위를 근절하고 정치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야 하는 시험대다. 그만큼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임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선거법 위반행위는 1시간에 1건 꼴로 적발되고 있다.

각 정당과 후보자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유권자들의 철저한 감시가 더욱 필요하다. 정당의 정책과 공약 또한 예리한 살핌이 있어야 한다. 언론·선관위 홈페이지 등에 공개되는 후보자 관련 정보 역시 꼼꼼하게 확인해 봐야 한다. 정치개혁을 위해 정치권의 의식전환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권자의 명철한 의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쏠림현상 경계해야 한다

나이도, 선수도, 성도 없다. 계보도 없다. 오직 이미지만 남았다. 17대 총선을 앞둔 대한민국 정치 상황을 나타내는 사실화(事實畵)다. 정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새로운 룰에 적응하는 자와 못하는 자 사이의 적자생존 성격이 강하다. 특히 혁명적 수준이랄 수 있는 선거법의 첫 적용사례라는 점에서 결코 간단치 않다. 한층 강화된 선거법을 감안하면 비록 당선된다 해도 촘촘한 법망을 빠져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야의 성패에 상관없이 정치권의 새로운 판짜기와 물갈이는 중요 기대치로 분석되고 있다. 누가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잡느냐에 머물지 않고 변화된 환경에 맞게 각 정파간 다양한 합종연횡과 정계개편이 자연스럽게 촉발될 것이라는 얘기다. 필연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진퇴 문제와도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17대 총선은 지난해 대선 처럼 친노와 반노, 민주와 반민주, 보수와 진보 대결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건전한 보혁구도로 재편될 것인지, 여대야소 정국으로 전환될지는 중요한 관전포인트가 됐다. 공천 물갈이로 시작된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는 정치권의 인적 청산을 촉발했다. 사회·문화 전반의 패러다임도 전환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중대한 획을 긋는 선거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염려되는 것이 있다. 정치불신 차원을 넘은 정치혐오에서 비롯된 정치인에 대한 평가덕목 변화다. 리더십이나 현안해결 능력보다 청렴성이 4·15총선의 첫째 덕목이 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청렴성이 국회의원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데 있다.

또 선거는 어느 후보가 깨끗한지 가려내기엔 턱없이 불완전한 제도다. 청렴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자칫 겉만 하얗게 분칠한 ‘이미지 정치꾼’들이 득세할 수 있다. 역대정권을 보면 ‘신악’이 ‘구악’보다 빨리 부패했다.

우려는 또 있다. 탄핵정국이 총선정국으로 이어진 점이다. ‘탄핵 찬성’‘탄핵 반대’의 분위기에 휩쓸려 투표를 하게 되면 인물과 정책 대결이라는 총선 본연의 의미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쏠림현상’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좋은 물건을 사려면 제품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좋은 후보 선택은 더욱더 그렇다. 그러기 위해 후보별 신상정보를 꼼꼼히 뜯어보고 살펴보는 유권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선거는 리트머스 시험지

포퓰리스트가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 세상이 돼버렸다. 매스컴이나 정당, 정부, 사회단체 모두 시민사회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침묵한지 오래다. 모두가 모르는 체 하는 사이 정당들은 드러내놓고 포퓰리즘으로 치닫고 있다. 포퓰리즘은 대중을 열광시키지만 사회의 골간을 병들게 하는 모순을 갖고 있다. 결국 ‘나’만 있고 ‘우리’가 없는 정치권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 자크 루소(프랑스 사상가·Jean Jaques Rousseau)가 200여년 전 역설한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는 논리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루소의 역설은 그저 기론(奇論)으로 끝나야 하는 데도 말이다.

4·15 총선은 대한민국 정치의 틀을 바꾸고 새로운 정치문화의 태동을 알리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유권자의 눈은 ‘알칼리’와 ‘산’을 분명히 구분, 선택해야 한다. 시류에 휩쓸려 소중한 한 표를 잘못 던진다면 버려야할 죽은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오늘은 식목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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